구원의 기준은 예수

비유(譬喩)말씀 속에 감춰진 비밀

제라늄A 2026. 1. 4. 05:04

마태복음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譬喩)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성경은 대부분이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비유를 풀 때에 말씀의 맥을 찾아서 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이고 추상적으로 풀어서 그 의미가 전혀 반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든지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해 캄캄할 때에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목회자의 설교가 무엇이 다른 지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유에 관심을 갖고 성경을 읽어보면 특히 선지 서에 책망의 대상이 거의 제사장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선지서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그것은 오늘날에 있을 그림자가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이 하나님이 명령하시지 아니한 말을 얼마나 많이 쏟아내는지 성경을 유의하여 읽어본 사람들은 충분히 동의할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고 볼 눈이 있으면 금방 발견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발견된 사람은 목회자의 설교가 역겨워 듣지를 못합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교회 부흥의 미끼로 사용하는 축복론 같은 것은 하나님도 예수님도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비유로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만 이해되도록 베푸셨기 때문에 보혜사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기 전에는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비유로 된 말씀의 의미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비유로만 말씀하신 이유가 궁금해서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마태복음 13:10~13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깨닫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깨닫지 못한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는 자기 백성에게만 듣고 보고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여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비유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깨닫고자 하는 자는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은 심정으로 울어대야 합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을 믿으나 세상적인 눈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한 복의 개념이 전혀 다릅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 내용을 들어보면 모두가 썩어질 것뿐입니다. 목회자의 설교 내용이 썩어질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에게서 태어난 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인들을 가르치는 목자의 가치 기준이 세상 적이기 때문에 그에게 서 배운 사람들은 그 아비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한다"(요8:44)고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입니다. 육신적인 교인들이 원하는 유업은 이스마엘과 에서가 원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성도가 원하는 유업은 이삭과 야곱이 원했던 것과 같은 영원한 하나님의 유업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예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다녔으나 그들은 잃어버린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았으나 표적의 의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다만 먹고 육신이 배부른 까닭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찾는 까닭이 무엇인가? 다만 축복받기 위해서라고 하면 과한 말인가? 누구나 원하는 바이지만 예수님은 그런 복을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갈 것을 말씀하시면서 열매를 보고 그들을 판단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마7:15~23) 기독교가 무슨 열매를 맺었고 또 오늘날 목회자들이 무슨 열매를 맺고 있는지 알려면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해져야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야 보입니다.  

요한복음 6:26~2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두운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을 비추는 이 빛이 생명이며 이 생명이 곧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들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말씀의 돌이 마음에 하나씩 쌓이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깁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겠는가?

 

성령께서 마음속에 오셔서 가르치시는데 어찌 거짓이 있겠는가? 

마태복음 7:24~25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그리스도) 위에 놓은 까닭이요,  주추를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놓은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자기 안에 모신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흉흉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올바로 경외하기 위하여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여 영접하고 그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오류가 예수그리스도가 주신 말씀과 성령에게 배우려 하지 않고 목회자에게 배우려 한다는 점입니다. 예수 외에 하나님께서 보내지 아니한 거짓목자들이 많이 와서 하나님이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전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인들이 은혜롭다고 받아먹는 설교가 성경에 비춰보면 얼마나 거짓말이 많이 섞여 있는지 모릅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본인이 성경을 직접 읽고 기름 부음의 가르침을 받는 방법 밖에 달리 없습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2.014  NO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