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준은 예수

여섯 번째 남편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중요)

제라늄A 2026. 2. 25. 04:54

요한복음 4:14~1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본 문장에 말씀은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의 실체와 성경전체의 흐름을 알아야만 해석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만물창조로 이해하는 오늘날 기독교 교리로서는 절대로 해석할 수 없는 난해한 말씀입니다. 각 교단마다 수많은 주석 책이 있지만 모두가 거짓이며, 비 진리의 누룩 섞인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이 글을 보셔야 합니다. 그럼 본 문장에 나오는 영생하는 (말씀)에 뜻을 이해할 때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본 문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즉 본 문장의 말씀같이 생수를 마시는 자는 영생한다는 뜻은 비유로 바로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뜻 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인간)이 매일 우물물을 길어다 먹었지만 갈증을 못 면했든 것은 참 진리에 말씀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늘 갈급한 심령으로 지냈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물이란 뜻은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는데 교회목회자들의 설교는 아무리 마셔도 갈증을 면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씨”가 없는 비 진리의 말씀으로 사마리아 여인이 매일 우물물을 길어다 먹었지만 매일 갈증을 느끼며 지낸 것입니다. 또 본 문장에서 느닷없이 예수님께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하니깐 나는 남편이 없다고 하니깐 예수께서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다고 하시며 네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남편이 다섯이 있다는 것은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남편, 또는 신랑이라고 하면 이 땅의 인간을 아내, 신부로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이 여인(인간)은 그 많은 물을 마셨어도 계속 목말라 했음은 즉 많은 말씀을 먹었어도 갈급했다는 것은 비 진리의 말씀 즉 거짓목자의 말씀을 먹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여자는 진리의 참 목자인 예수를 우물가에서 만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라 함은 그때당시 개 같이 취급했던 이방여인으로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선민으로 정한 이스라엘 백성 외에는 모든 민족이 이방인으로 취급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사마리아여인을 사랑함같이 오늘날 이방인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과 사마리아여인이 만남을 성경에 등장시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로 적용을 해본다면 그 여인은 교회의 성도들을 말할 수 있고, 그 남편이라 함은 말씀을 전하는 교회의 목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다는 뜻은 창세기 6일 천지창조(天地創造)는 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창조하는 과정을 이해할 때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지 만물장조로 이해 할 때는 모두가 거짓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천지창조기사는 자연계 천지창조를 비유해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기사인 것입니다. 의 존재인 인간을 하늘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 천지창조(사1:2)의 깊은 뜻이 있으며 이것이 성경전체의 핵심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는 것이 6일 창조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전에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에 이르지 못함으로 인간을 미물이나 물고기 기는 것(뱀) 짐승 가축으로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 첫째 날에서부터 여섯째 날까지 모두 인간을 하나님 형상으로의 창조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6일 창조 기록에서 물고기, 기는 짐승, 걷는 짐승, 육 축, 여자, 남자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정리를 한다면 물고기상태에서 거듭나면~ 기는 짐승이 되고(뱀) 기는 짐승이 거듭나면~ 걷는 짐승이 되고, 걷는 짐승이~ 가축이 되고~ 여자가~ 남자로 거듭나 6일 창조가 완성되는 것이 “천지창조”입니다. 이와 같은 경로를 통해서 이것은 날의 개념이 아니라, 여섯 단계로 한 단계씩 성장해서 즉 여섯 번 거듭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났을 때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들어오셔서 안식하시는 것이 “천지창조(天地創造)입니다. 이것이 제 칠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안식일”의계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오늘날 기성교단인 애급세상을 상징하며, 기는 짐승과 걷는 짐승과 가축은 광야교회를 상징 합니다. 그런데 짐승의 상태에서 한 단계 올라가면 가축으로 성장하는데 가축은 가나안 직전에 들어갈 수 있는 단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 “양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 남자는 하나님의 교회 가나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을 상징한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사람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암컷과 수컷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씨앗을 소유한 남자에게 여자가 남자의 씨를 받아야 하는 여자를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는 모두 인격을 갖추고 있는 동일한 사람 같지만 남자는 “씨를 가지고 열매를 맺는 나무이며, 여자는 남자로부터 “씨를 받아야 할 밭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11:3~5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같이 인간인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정결한 처녀로서 남자(영)로부터 씨를 받아서 잉태하여 다시 거듭나야 남자(예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결한 처녀(인간)인 마리아가 말씀이 (잉태)하여 거듭남으로 여자(인간)에서 남자(예수)로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일창조의 완성이며 이때 하나님께서 남자 예수 안에 안식하시는 것이 “제 칠일 안식일”인 것입니다. 창조라는 것은 6번 거듭남으로 일곱 번째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이 안식일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6일 창조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하여 장성한 자로 완성되기 까지가 6일 창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6번째 남편 예수를 만난 것은 인간이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예수로 거듭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이 전 남편이 다섯이 있다는 것은 다섯 번 거듭남을 말하는 것이므로, 여섯 번째 우물가에서 남자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마태복음25장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신랑을 만나는 것 같이 이 여자는 인간으로서 장성한 자로 완성직전의 남자예수를 만남으로 인간이 예수로 거듭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태어나는 실존 인간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천지창조(天地創造)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이 사마리아 여인을 남편이 다섯이나 있다 해서 창녀로 해석하는 것은 모두가 비 진리를 남발해 교인들의 영혼을 모두 지옥으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거짓목자를 조심하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것을 보면 오늘날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을 볼 때 누가 참이고 거짓인지 평신도 입장에서는영안이 없으면 분별하기란 참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날 신학교만 나오면 다 목사가 되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하고, 하나님에 부르심 을 받고 보내서 왔다고는 말을 하는데 사실이 그럴까? 그렇다면 거짓목자는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에 말씀을 정확히 분별치 못하며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본뜻을 알지 못하고 인간의 지식 차원에서 표면에 나타난 말씀만 보고 세상과 섞인 말씀 즉 문자적으로 이해할 뿐 그 속에 깊이 감추어진 영적인 말씀은 알지 못하고 누룩 섞인 듣기 좋은 인간에 말로 하나님에 말씀을 왜곡하는 자는 거짓목자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남편이 다섯이나 있다 해서 부정한 여자, 창녀로 해석한다면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전하는 자를 거짓목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목자를 잘 관찰해서 본인 자신의 영성이 정상적으로 성장하는지 본인 자신이 깨달아서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본 문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이 참 목자인 예수를 남편으로 만났을 때 더 이상 목마름의 갈급함이 없이 참 목자의 말씀으로 영성이 성장할 수 있는 거와 같이 오늘날에도 참 목자를 만나는 것이 큰 축복이고, 시간낭비하지 않고 순탄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2.014  NO 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