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 31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시편 119:140-144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나이다.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주의말씀 주의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이것들을 깨닫는 것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 소원이 있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주의 말씀을 깨닫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내 영혼의 양식일진대 나의 소유는 주의 말씀이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깨달으라 하심입니다. 깨달아야 ..

신(神)과 영(靈)은 어떻게 다른가?

에스겔 36:26~27 또 새 영(靈)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神)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상기의 말씀은 사람에게 새 영(靈)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왜 새 영을 주시는가?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셔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대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신(神)을 주셔서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분명히 사람에게 지어주신 것은 영(靈)으로, 하나님 자신은 신(神)으로 구분해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신(神)과 영(靈)을 잘 구분해서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은 번역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신..

기독교 삼위일체 하나님과 불교의 삼신불

절에 가서 대웅전을 들어가게 되면 대부분 세 개의 부처를 만나게 되는데 중앙에 있는 부처를 법신불이라 하고 좌측에 있는 부처를 화신불이라 하며 우측에 있는 부처를 보신불이라 합니다. 이 세 부처가 하나가 되는 사상을 법화사상이라 하는데 법이란 진리를 말하며 화란 빛날 화요 꽃 화이니 진리의 법이 환하게 비취면서 진리의 꽃이 만발한 삼신불의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법당에는 삼신불의 진리가 환하게 비취고 있으니 대낮과 같이 밝은 진리를 소유하는 자들이 되라는 것이며 삼신불과 같은 빛의 사람들이 되라는 것이니 삼신불이 가지고 있는 진리의 꽃들이 만발하고 있는 진리의 꽃밭에서 주인공들이 되라 하십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진리와 똑같습니다. 말씀이신 성부하나님과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자예수님과..

기독교의 육일창조와 불교의 육 바라밀창조

기독교의 6일 천지 창조와 불교의 6 바라밀 창조는 용어만 다르지 내용은 똑같습니다. 기독교의 6일 창조는 성경창세기에 자세히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문자 그대로 만물창조로 해석을 하지만 불교의 6 바라밀창조는 불교금강경에 너무나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것은 만물창조가 아니라, 비유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6번 거듭나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창조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6 바라밀을 확실히 이해를 하면 창세기 6일 천지 창조가 만물창조가 아니라, 땅의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나지 못한 인간세상의 어둠의 존재를 물고기나 짐승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욥기 12:7~8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

기독교와 불교는 용어만 다르지 똑같은 종교다.

기독교의 근본사상은 부활이요 불교의 근본사상은 해탈(解脫)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부활과 해탈은 어떻게 다른가? 계란에서 부화되어 나오는 병아리를 보고 기독교인들은 부활이 되었다고 말을 하고, 불교인들은 해탈되었다고 말한다 해도 그 의미나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활이나 해탈은 용어만 다르지 모두 동일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라 부르고, 시대 신(是大神)을 불교인들이 반야(般若)라 부른다 해서 유일신이 두 신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독교와 불교는 유일하신 시대 신(是大神)을 각기 자기들의 신(神)이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 신(是大神)을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라 말하는 것은 신(神)은 오직 한 분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신..

천국과 극락의 실체

사람들은 천국은 오직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만 들어가는 곳이며 불교인들이 들어가려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극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과 극락은 어떻게 다르며 또한 극락은 어떻게 들어가며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 곳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은 천상의 세계로 부처를 믿으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하여 진리를 깨달아 해탈이 된 부처님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천국과 불교인들이 말하는 극락은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고 타당성이 있을까? 그러므로 사람들이 천국이나 극락을 논하는 것이나 들어가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먼저 천국과 극락에 대해서 보다 확실하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천국이나 극락을 가보..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한다.

요한복음 12:23~25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자기 생명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생하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의 목적은 순간적인 삶을 살다가 불티처럼 사라질 천박한 생명을 당신의 거룩한 생명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육신적인 소욕(所欲)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체를 죽이..

육체의 성전은 가정을 교회로 **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왜 우리 몸속에 영혼을 넣어 주시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시게 하셨는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성령이 없는 몸 또한 성전일 수 없습니다. 성도의 몸은 성전이어야 하고, 성도의 가정은 교회이어야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자기 안에 모신 사람은 건물 성전을 찾아가 하나님을 만날 필요가 없고, 가정이 교회인 사람은 꼭 예배를 드리려고 예배당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설교를 꼭 목회자에게 들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지 목회자에게 맡겨서 가르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 관계로 비유하여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해산의 고통에 비유한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

주의 강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중요)

데살로니가전서 4:13~17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기독교의 대다수의 목회자..

공중에서 주를 어떻게 영접하는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기독교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 우리가 눈으로 보는 공중으로 재림하시고 그 때 살아남은 자들은 공중으로 들림(휴거)을 받아서 그곳에서 주님을 영접한다고 문자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있고, 영적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문자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영적으로 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고 주님이 과연 어디로 어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