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6:33-3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안팎”으로 오묘하게 “비유비사”로 깊이 숨겨진 비밀의 말씀임으로 “영안”이 열리지 못하면 기록된 말씀을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상기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수석 제자인 “베드로”는 주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으니 나는 주가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겠다는 호언장담 하는 것입니다. 수석제자 “베드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네가 나를 위하여 진정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모습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닭이 울기 전”이란 닭이 우는 시간은 새벽에 날이 밝기 직전에 울기 때문에 아주 영적으로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날이 밝기 전”이란 뜻은 “어둠의 존재”가 “빛의 존재”로 거듭나기 직전을 “닭이 울기 전”에 “3번” 예수를 부인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를 창조하시는데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하루씩 창조할 때마다 매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저녁”(어둠)의 존재가 “아침”(빛)의 존재로 창조하는 과정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한다”는 뜻은 닭은 아침새벽 동트기 직전에 울기 때문에 아직 “아침” 직전이라 “밤”의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를 부인한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새벽동트기 직전”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기 거의완성에 도달한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빛”의 존재로 거듭나기 직전인 “어둠”의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를 부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의 실상을 “베드로”를 통해 잘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또 그리고 예수를 “3번씩”부인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이라는 세상에서 “우상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모세를 시켜 강제로 “출애굽”시키신 것처럼 오늘날 “애급”이라는 세상기독교에서 종교생활 하는 “육”(肉)의 존재가 “출 애급”을 해서 “광야”로 나가 “불기둥구름기둥”으로 “징계연단”의 훈련을 받고 “육”(肉)의 존재에서 “혼”(魂)의 존재로 거듭나야 하고 또 “혼”(魂)의 존재가 “영”(靈)의 존재로 거듭나야 하고 “가나안”에 입성한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죽고 부활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肉) “혼”(魂) “영”(靈)의 존재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세상에서 종교생활 하는 “애급”의 존재는 “홍해바다”의 말씀의 바다에 빠져서 “한번”죽고 부활해야 되고 “광야”로 나와서는 “요단강” 말씀의 강에서 침례로 “두 번째”죽고 부활해야 되고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십자가”가로 “세 번째”죽고 부활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3일”만에 부활하신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십자가나 침례의식”은 똑같은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도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아 주시기 위해서 “비유”로 46년 된 예루살렘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면 내가 “3일”만에 다시 짓는다(요2:19-22)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3일”의 의미가 차원적으로 “애급, 광야, 가나안” 3 일길의 중요한 영적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노아방주가 “3층”으로 차원적으로 건축되었으며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성전이 “3층”으로 차원적으로 건축을 했고 사도바울이 비몽사몽간에 셋째 하늘 “3층”천을 다녀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이 예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은 깊이 감춰진 비밀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실존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은 아직 베드로와 같이 “아침”(빛)이 되지못한 “저녁”(어둠)의 존재이기 때문에 부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필자 “새사람”의 글을 영접하면서 이 말씀이 진짜라고 확신하고 매일 들어와서 구독하지만 얼마 못 가서 이단이라고 배척하고 다 떠나는 것은 “베드로”와 똑같이 아직 “빛”의 존재인 “아침”이 되지 못한 “어둠”의 존재이기 때문에 부인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수석제자인 “베드로”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실망을 하며 수석 제자인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를 부인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지만 “베드로”의 모습이 바로 진리의 길을 가는 “신앙인”들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고 떠난 것 같이 아직 “예수”와 같은 존재가 되지 못한 자는 모두가 “예수”를 부인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 “새사람”의 말씀을 영접하신 분 중에는 필자를 배반하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는 비법을 소유하신 분도 계십니다. 그 비법은 그분만이 깨달으셨기 때문에 그분만이 떠나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비법을 아시는 분은 결국은 “필자”가 누구인지 시인하게 되는데 그때는 필자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필자”가 누구인지를 본인자신만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계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같이 말씀을 받고 깨달은 자만이 그분이 누구인지 본인 자신만 알 수 있지 깨닫지 못하면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안팎”으로 “일곱 인”으로 봉한 말씀임으로 “일곱 때”만에 부활한 “예수님” 이 아니면 아무도 성경을 열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학”을 한 목사의 설교 말씀으로 종교생활 하시는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기독교에서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 즉 “징계와 연단”의 훈련을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가 오늘날 “실존예수”의 음성을 직접 들어야 “혼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거듭”(부활) 나는 것입니다. 요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같이 기독교인들은 “가나안”에만 계신 오늘날의 “실존예수”를 만나야 “혼의존재”가 “영의존재”로 “거듭”(부활)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기 유익이나 이권을 위해서는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세 번”아니라 “삼십 번”도 부인하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둠”의 존재는 “빛”의 존재인 “실존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자신이 “예수”와 같이 “거듭”(부활) 나기 전에는 “베드로”와 똑같이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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