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제라늄A 2023. 9. 24. 17:21

마태복음 19:19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도마복음 25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이웃을 네 영혼처럼 사랑하고 네 눈동자와 같이 그들을 보호하라,  이 말씀은 네 이웃을 네 영혼과 같이 사랑하고 네 눈동자 같이 보호하라 고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정말 사랑하고 눈동자 같이 보호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은 인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말하며 이웃을 내 몸같이 구원하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갈 5: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며 성경의 모든 율법이 네 이웃을 사랑하여 네 몸과 같이 만들라는, 이 한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3:10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여기서 창고는 거듭난 자의 몸(성전)을 창고로 비유한 것이며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뜻은 하나님의 성전 된 자의 몸에는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그 말씀으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4:28-29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몸)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이 말씀은 네 몸에 저축한 말씀으로 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 배부르게 먹이라는 것입니다. 즉 충분히 먹여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거듭난 자의 (창고) 안에 있는 양식으로 심령이 갈급해하는 영적 레위인, 고아, 과부, 나그네들에게 배불리 먹여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만드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웃을 사랑하는데 인간의 윤리도덕인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같이 만들어야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은 구원이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웃을 사랑해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만들어야 율법이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며 십자가를 상징하는 말씀으로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아가페)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아가페)하는 것이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냥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으려하는 기독교인들이 전도의 사명을 하지 않거나 해도 올바로 행치 않아 이웃의 영혼이 죽으면 그 영혼의 죄 값을 그 전도자에게 받는다는 무서운 말씀이 에스겔서에 잘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3:17-19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상기의 에스겔서의 말씀은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만약에 네가 이웃에게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네 이웃은 그의 죄 값으로 죽으려니와 이웃의 죽은 피 값을 너에게서 받으시겠다는 말씀이며 만약에 네가 이웃에게 복음을 전했는데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네 이웃은 자기의 죄 값으로 죽으려니와 너는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인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에스겔서의 말씀같이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이웃의 영혼을 반드시 구원하고 살려서 내 몸같이 만들어야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죽을힘을 다해도 말이 쉽지 그렇게 쉽게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같이 아무나 붙잡아 교회에 앉혀놓는 것이 전도가 아니라 내 살과 피를 내주어 내 몸같이 만들어야 내가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려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이나 사도들같이 이웃을 반드시 구원해야 내가 구원을 확실하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자격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거듭나야 영혼을 구원하는 아가페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장성해서 내가 거듭나면 반쪽 구원을 받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이웃을 구원해야 완전히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딤전 4:15-16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같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웃을 내 몸같이 만들어야 내가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구원의 빚을 완전히 갚는 것입니다.

사랑의 빚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빚을 말하는 것인데, 은혜의 빚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 사랑에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빚을 하나님께 갚으려면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므로 하나님께 진 빚을 갚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난 것처럼 내가 희생의 피(말씀)를 흘려 이웃을 살려서 나와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계명입니다.

마태복음 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성경의 가르침이 사랑이 으뜸이며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야말로 예수님은 사랑에 대한 실천을 가장 먼저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구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즉 사랑이 곧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롬 13:8 사랑(구원)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구원)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모두 이룬 자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율법이 있는데 이웃을 사랑 즉 이웃을 구원함으로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안에는 그런 사랑(아가페)이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아가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거듭난 자 안에만 있기 때문에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인간의 사랑인 필로스 사랑만 있을 뿐 아가페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에게도 없던 사랑이 바로 아가페사랑입니다. 이 아가페사랑은 원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글자는 똑같으나 내용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에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세 번씩이나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서로 다른 차원의 문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아가페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고 베드로는 인간의 윤리도덕인 필로스사랑”으로 “사랑”한다고 세 번씩이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의 질문과 “사랑”한다고 대답한 베드로의 “사랑”은 글자는 똑같으나 전혀 뜻이 다른 차원의 대답인 것입니다. 원문을 통해서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알 수 있지 한글만 보는 사람은 “사랑”이라고 하니까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윤리도덕인 “사랑”으로 불쌍한 사람을 도아주고 이웃을 찾아다니며 “사랑”이라는 명목아래 도와주고 구제도하고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라는 “사랑”인 줄 알고 “율법이 완성된 줄 기독교인들은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1서4:7~12)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