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여자에게 잉태하는 고통을 더하심,

제라늄A 2023. 10. 2. 23:22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뱀의 미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고 남편에게도 준 여자에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수고를 해야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기독교인들은 여자들이 아기를 잉태할 때나 해산할 때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여자들이 선악과를 먹은 여자 한 사람 때문에 모두 해산의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성경은 비유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 일상용어로 기록되었으나 육신의 눈으로 문자로 해석을 하면 큰 오류를 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잉태와 해산의 고통은 육신의 아이를 낳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영적인 아이를 낳는 해산의 고통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말씀으로 잉태시켜 해산하는 고통과 사도바울이 디모데와 디도 오네시모 등을 복음으로 낳는 해산의 고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인 여자들이 아이를 낳을 때 해산의 고통을 비유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인 여자들이 아이를 낳을 때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본 여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복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 수고와 고통은 어떠했을까? 하나님은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생명을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가중시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은 한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기까지 얼마나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데 아무런 해산의 고통도 없이 얼마나 쉽고 힘 한번 주지 않고 간단하게 하나님의 아들을 낳고 있습니까? 오늘날 목회자들은 어느 누구나 예수를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그 즉시 아들이 되었다고 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는 군대나 재소자들을 찾아가서 예수를 믿게 하여 한 번에 백 명 혹은 몇 백 명씩 집단으로 한순간에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의 아들이며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유대 땅에 오셨지만 아들을 겨우 12명밖에 낳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  상기의 말씀과 같이 사도바울은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을 낳기까지 내가 다시 해산의 수고와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육신의 아기를 낳는 수고와 고통도 크지만 영적인 자식을 잉태하여 아들로 낳는 해산의 고통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해산의 고통은 영혼을 구원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도 그의 제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낳기까지 3일 또는 3년이라는(애급광야가나안)세월동안 잉태의 과정과 살과 피를 흘리는 해산의 고통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잉태하는 수고나 해산의 고통 없이도 하루에 수십 명씩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아이를 잉태하거나 아이를 낳을 때 힘 한번 주지 않고 아주 쉽고 간단하게 하나님의 아들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오늘날 목회자들이 아무런 해산의 고통도 받지 않고 믿음 하나로 쉽고 간단하게 낳은 아들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목회자들이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능력이 더 많다는 말인가? 그러나 기독교목회자들이 공장에서 가짜상품을 찍어내듯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곧 목회자 자신이 마귀의 아들이요 독사의 자식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이어지는 말씀은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상기의 말씀들은 모두 영적인 남자와 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여자를 잘 다스리라는 말씀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여자는 남편을 주님과 같이 존경하며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일까? 그런데 기독교인들도 부부싸움을 수시로 하며 이혼까지 하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다는 남편과 아내들이 서로 미워하며 다투고 이혼까지 하면서도 자기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고 천국도 들어간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믿음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모하라는 남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말하며 남편이 다스려야 하는 여자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 가나안땅에 이른 자, 즉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말씀으로 깨끗해진 정결한 처녀 같은 동정녀 마리아를 비유하여 여자의 영적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바울은 영적인 아내와 남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5:22~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 할 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상기의 말씀은 육신의 남편과 아내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영적인 남편과 영적인 아내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영적인 존재로서 육적인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짝지어준 영적인 남편 곧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께 복종하듯이 잘 섬기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모시고 있는 영적인 남편이 바로 자신을 구원하는 구원자이며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천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예수님만이 자신의 신랑이요 남편이라 생각하지 오늘날의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오늘날 실존예수님은 남편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유대인들과 똑같이 이단으로 배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예수님을 영접해야 구원을 받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실존예수님을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예수님을 영접을 안 하고 이단으로 배척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실존예수님을 영접 안 하고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1:11-12 세상(백성)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렇게 실존예수님은 자기백성들이 영접을 안 한다고 오늘날도 한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준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며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아내를 거느리고 있는 영적인 남편들은 아내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신 것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 목자 실존예수들이라면 교인들 사랑하기를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고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흘리신 것 같이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같이 자신의 몸을 그의 제자들에게 모두 내어주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지 않고는 여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기준은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예수를 믿는 신앙은 누구나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어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