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 십자가의 죽음은 비유와 상징이다 ※

제라늄A 2020. 2. 4. 01:09

 

                                십자가의 죽음은 비유와 상징이다

신구약 성경은 모두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천국건설에 대한 예언이다. 천국건설에는 반드시(말씀)가 요구됩니다. 구약성경의 어린양은 신약성경의 예수님으로 왔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즉 구약성경에 나오는 어린양의 희생제물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일차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씻기 위한 대속의 가치로 십자가에서 죽어주셨고 부활하셨으며, 우리도 각자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죽음이란 죄에서 돌아서는 것과 다시 사는 부활을 상징할 뿐이며 비유일 뿐입니다. 죄에서 돌아서서 다시 사는 부활을 상징 하기 때문에, 부활 역시 오늘날 우리가 문자적 무덤으로부터 죽은 시체가 일어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와 그 부활은  죄성인 내 자아가 죽고 죄가 없는 나로 다시 태어나는  영적 죽음과 영적 부활을 뜻하는 비유였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육적 십자가와 문자적 무덤에서의 부활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그 것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비유와 상징으로 주어진 것이므로 신구약 성경 66권은 모두 봉한 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모두육체 죽음을 죽었으나 그와 같은 육체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들에겐 전혀 해되지 않습니다. 오늘에 다시 오시는 재림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게 될 인 맞은 자 144000거듭난 자는 영적 죽음과 영적 부활을 해야 합니다. 이 영적 죽음과 영적 부활이 예언 성취입니다.

 

예언 성취인 영적 죽음과 영적 부활이야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죄 사함이며 영생의 길됩니다. 이렇게 영생의 길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영적 십자가에 있습니다. 과거 육체의 십자가란 오늘의 영적십자가를 깨달으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율법이었고  비유였고  암시였고  몽학선생이었고  초등학문이었고  비밀이었고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천년 동안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면서도  십자가의 비밀이며 비유이며 초등학문이며 비유의 그 율법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죄인 명백히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죄 성의 내 자아가 죽고 죄가 없는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그 영적 십자가란, 오늘날 나의 무엇이 죽는 죽음인가초림예수님의 복음을 받은 내 영적 생명이 죽는 죽음이다. 즉 초림주가 주신 복음교리를 버리고 진리의 새 말씀으로 나오는 일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비진리의 문자적 복음을 그대로 믿고 있다면 그것은 멸망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과 그 육체의 십자가비유/비밀/초등학문 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육체의 십자가는 오늘 우리의 이러한 초등학문을 죽이라는 의미의 죽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죽어야할 영적 생명 과거 예수님은 육적 죽음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에 성경은 비유비사로 감추어진 예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죽어야할 영적 생명은 바로 복음교리입니다. 따라서 아직 복음을 받지 아니한 세상 무교 자들에겐 죽어야할 영적 생명이 없고 부활도 없습니다. 오직 오늘날 복음을 받은 백성들에게만 죽어야할 영적 생명이 있고 영적 부활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 부활이란 무엇인가

 

복음과 그 육적 십자가는 비유였는데, 그 비유의 성경을 모두 풀어낸 진리의 새 말씀을 받는 자들 영적 부활 자들이 됩니다. 즉 신구약 성경전체의 비유비사의 말씀을 명백히 깨닫는 일이 부활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경을 모두 깨닫게 된 부활이란 그 후에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되는 구원의 역사까지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영생은 참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달으면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17:3)

 

예수님이 과거에 그 육체가 죽고 문자적 무덤에서 부활하셨으나 그것은 비유와 상징으로 보여주심으로 이 땅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 직결되지 못하고 오늘의 재림을 약속하시고 떠나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오늘의 영적 십자가를 지시고 영적 부활을 받는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영적 죽음과 영적 부활이 과거의 육적 십자가와 문자적 무덤에서의 부활을 완성하시게 됩니다. 율법을 완성하시게 됩니다. 재림주가 율법을 완성하시게 됨으로써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영원히 사는 천국으로의 초대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받은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의 완성 아니며 우리의 육체가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10처녀 비유 중에서 기름 준비된 슬기로운 다섯 처녀(말씀 깨달은 자) 그 깨달은 상급으로 신랑인 재림예수를 맞함으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되는 것이 구원이요 천국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영적 십자가와 영적 부활이란 비유의 복음에서 죽고 진리의 새 말씀에서 다시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께서는 아래와 같이 알려주셨습니다.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 때에 끝이 오리라,  마 24:16~20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했다.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을 찾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붕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가지 말라는 말씀은 멸망의 가증한 것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곳에서 나온 후에 비 진리 교리에 미련을 두고 다시 그곳을 들어가지 말라는 말씀이며, (교회)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는 것은  비 진리의 말을 들으려고 다시 그곳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이 화가 있다는 것은 아이 밴 자라는 것은 초림주의 말씀으로 내안에 이루어진 즉 잉태 된 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고 젖먹이는 자가 화가 있다는 것은 비 진리의 말씀으로 영적으로 어린 자를 양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의 목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은 이들이 성도들에게 먹여 온 말씀이 초림 주에 진리가 아닌 문자적인 말씀을 먹여서 성도들의 영혼을 죽이는 목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주의 하라는 말씀은 겨울이란 추운 날씨입니다. 성경은 인간심령과 관계된 기이기 때문에 춥다는 것은 심령의 믿음이 냉담해진 상태 즉 믿음이 식어진 상태이므로 시온 산으로 도망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은 편안히 쉬는 때입니다. 하루속히 진리를 찾아 나와야 할 때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안주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시기를 놓치지 말고 예수님께서 가라고 하신 산(진리)으로 가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이어지는 말씀에 오늘의 영적 십자가와 영적 부활이란 명명백백히 참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깨닫게 된 자들이 구원을 받아 영원히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초림 예수님의 육적 십자가란 초림 때 받은 내 복음이 죽는 죽음을 보여주신 비유였으며, 초림 예수님의 부활이란 재림 예수님 때는 진리의 새 말씀에서 다시 사는 일임을 보여주신 비유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비유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의 새 말씀으로 다시 살 때 만이 마침내 우리의 죽을 몸이 죽지 않고 우리의 썩을 몸이 썩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되는 그리스도의 천국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초림주의 십자가의 피(말씀)흘림이란, 그리고 초림주의 부활이란 이렇게 나의 유한한 생명이 끝나고(죽고) 영원한 생명으로의 초대를 받도록 하는 오늘의 재림 때에 대한 비유비사였던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