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일창조의...

※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산 자의 어미) ※

제라늄A 2021. 2. 2. 21:26

창세기 2:22-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도 모두 흙으로 만드셨는데 무엇 때문에 “여자”는 흙이 아닌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을까?  생명이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기정사실인데 왜 하와를 만드시는데 흙이 아닌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을까?  이 말씀 속에는 기독교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큰 비밀”이 창세부터 오늘날까지 깊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여자”를 만든 “갈비뼈”의 실체는 무엇일까?  아담이 모든 짐승들을 상태와 차원에 따라 이름을 준 것같이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하와도 어떤 영적 존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아담이 하와를 바라보고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의 “비밀”이요, 성경 전체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의 열쇠를 바로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아담이 말하는 “살 중에 살과 뼈 중에 뼈”는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할 때 예수님이 먹으라고 주신 “떡과 포도주는 살과 피”인데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비유”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이란  말씀의 실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육신(몸)을 입고 오신 것과 같이  육신(살)은 말씀을 “비유”로 하신 것이며 또 “피”는 포도주(말씀)를 상징하며 십자가에서 희생의 “피”(말씀)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주시는 자의 입장은 희생의 “피”(포도주)를 주는 것이고, 먹는 자의 입장은 “살”(떡)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고 장성한 자로 성장하면 죽어있는 영혼들에게 필히 그들에게 자신의 “희생의 피”(말씀)를 주어 그들을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소유하지 못한 오직 예수님이 소유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정리를 해보면  “살”(떡)을 받아먹고 죽었던 자가 살아난 자는 죽은 이웃에게 자신의 희생의 “피”(포도주)를 주어 살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진정한 영적 의미는 복음을 주는 자의 입장은 자신의 희생의 “피”(포도주)를 주는 것이고, 받아먹는 자의 입장에는 “살”(떡)을 먹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죽었던 자가 예수의 희생의 “피”(포도주)를 먹고 살아나 장성한 자로 성장한 자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는 말은 자신의 희생의 “피”(포도주)를 주어  죽어있는 영혼을 살려야 하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어디에는 “그리스도 예수”로 기록이 되어 있고 어디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라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게 되는데 같은 뜻이 아니라  복음을 주는 자의 입장은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며, 복음을 받고 장성한 자로 성장한 자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찬식”의 의미가 깊은 영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창세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나 “살과 피”는 하위 개념의 말씀이라면 “살 중에 살과 뼈 중에 뼈”는 상위 개념인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여자”는 육신적인 “하와”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할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인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비밀은 하나님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비밀은 곧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에서 취하여 만든 배필은 곧 인간을 구원할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뜻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 15:45-47 첫 사람 아담은 생혼(프시케)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퓨뉴마)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이 말씀은 “첫 사람 아담”은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둘째 사람 아담”인 마지막 아담이 하늘에서 난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를 빼는 것은 아담은 땅에 속한 자를 상징하며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여자”는 “첫째 아담”이 거듭난 “둘째 아담”으로 거듭난 “둘째 아담”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첫째 아담”이 거듭나 “둘째 아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아담”은 하늘에서 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곧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와 똑같은 생명의 말씀을 “비유”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살과 피”는 하위 개념의 말씀이라면 “살 중에 살 뼈 중의 뼈”라고 하는 말씀은 상위 개념인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그 “비유”의 말씀에서 반드시 죽으라는 뜻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피”를 흘리시고 “살”이 찢겨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비유”속에는 반드시 깊이 감춰진 본질의 말씀이 감춰져 있으매  그 진리의 말씀을 일컬어 “살 중에 살 뼈 중의 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서 육적인 존재가 죽는 것은 “겉 사람”(自我)이 죽는 것이고, 그로부터 다시 “속 사람”(眞我)로 부활(거듭)하는 것은 감춰진 진리의 새 말씀으로 부활하는 것이 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란 반드시 죽어야 하는 동시에 그 안에는 반드시 다시 살게 되는 진리의 말씀이 감춰져 있다는 뜻에서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고 한 것입니다. “뼈”란 몸을 떠받쳐 주는 핵심 골격이 아니던가?  예수님의 말씀에는 본질을 위해 “비유”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을 위해 “영생”이 있음이 아니고 “영생”을 위해 죽음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질은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는 “첫째 아담”은 사망이요,“둘째 아담”은 “영생”입니다. 오늘날 육적인 “자아”(自我)가 죽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진아”(眞我)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새 말씀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부터 감추인 비밀의 말씀은 바로 “살 중에 살 뼈 중에 뼈”인 새 말씀으로 다시 부활되어 살아나는(거듭)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여자”는 “하와”가 아니라  오늘날 죽은 자들의 생명을 “새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는 오늘날에 “실존 예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살 중에 살 뼈 중에 뼈”인 “하와”가 오늘의 “실존 예수님”을 뜻하는 엄청난 진리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성경 역사에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을 진리의 “새 말씀”으로 낳음을 받은 자들이 차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죽은 자”들이 “산 자”로 살아나는 것은 오직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새 말씀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든 하와는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계 19:13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 하더라,  이같이 오늘날에는 “슬기로운 5 처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기름 준비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땅의 “신부”가 하늘의 “신랑”을 맞이하는 것과 같이  피 뿌린 “말씀의 옷”을 입어야  하늘의 “영”이 임함으로 하나님의 아들 “실존 예수님”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