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옷을 입지 않은 벌거벗은 기독교인들

제라늄A 2023. 7. 29. 16:07

                        옷을 입지 않은 벌거벗은 기독교인들  

마 22:11-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때 거기서 예복(말씀)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이 이해를 하신다면 정말소름이 끼치는 말씀입니다.  계 16:15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롬 13:14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사람이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입니다. 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짐승처럼 육신의 욕망과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므로 영적존재이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영장 노릇을 포기하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짐승처럼 죽어 간다면 그는 옷을 입지 않은 벌거벗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었다고 합니다.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경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면 옷을 입지 않은 벌거벗은 자라고 하는데 상기의 본문에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었으면 지옥 불에 던져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예수는 철저히 잘 믿는데 성경말씀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을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는 기독교인들이 옷을 입지 않은 벌거벗은 자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과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절대적인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이 바로 성경에 비유로 기록된 하나님의 옷을 입은 자가 아니면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한 마디도 안하셨습니다.

막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비유를 깨닫지 못하면 벌거벗은 자로 구원을 얻지 못하므로 반드시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알아야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성경은 말씀의 옷을 입어야 구원과 영생인데 성경을 모르면 벌거벗은 자이므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구원을 못 얻느냐 하면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모르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상용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모두가 하나님께서 깊이 비유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입니다.  계 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 하였더라,

일곱 인으로 봉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성되어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예수가 되기 전에는 성경을 아무도 풀지 못했다는 뜻에서 일곱 인으로 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껍데기 성경문자를 그대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안팎으로 기록된 성경을 알아야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밖으로 기록된 문자 성경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옷을 입지 않은 벌거벗은 몸일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성경을 비유로 말씀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창세 때 빛과 어둠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빛의 하나님이 되시며 어둠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위에 물과 궁창아래 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궁창아래 물은 어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비유로 주시고 비유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어둠의 존재가 궁창위에 물이 되며 의 존재로 거듭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빛과 어둠으로 오신 분인데 사람들이 과연 성경 비유의 참 뜻을 깨달아서 그 깨달음의 빛의 존재로 거듭났는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이 주신성경을 비유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었던 것이니 지금까지 어둠이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벌거벗은 수치스러운 몸이지만 벌거벗은 줄을 모르기 때문에 수치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은 후에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이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몸이 보였다는 그 점에서 수치를 느끼고 하나님 앞을 떠나 숨어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고 원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숨어 있는 아담을 끄집어내어 분노하여 가라사대 누가 너의 옷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라고 심히 꾸짖어 심판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옷을 벗은 줄 몰랐으나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자신들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게 옷을 입지 않은 벌거벗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되는 아름다운 관계가 소통이 끊어지는 원수관계로 돌변하고 말았으니, 이는 곧 뱀(사단)이 주는 선악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면 뱀의 실체는 누구이며 뱀이 주는 선악과는 무엇이기에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은 몸이 보인 까닭에 하나님을 피하여 숨게 만들었단 말인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 단절시켜 원수관계를 만든 자들이 뱀의 실체인 사단마귀들입니다. 그리고 이 뱀(사단)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준 달콤한 선악과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믿으면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기독교가 선포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론으로 우리는 모두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 선악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보기에 심히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고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비유로 감춰진 말씀이요, 이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신다(막4:11-12)고 분명히 했는데 어찌하여 믿으면 당장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가?  당장 구원을 받았다고 하기 때문에 뱀이 주는 그 선악과는 심히 먹음직하고 탐스러워 오늘날까지 기독교에서는 계속 따먹는 유혹을 누구나 받기 마련입니다.

믿으면 당장 구원이라는 하는 달콤한 말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이 비유임이 드러나고 비유이기 때문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옷을 입지 않은 벌거벗은 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입니다. 내가 옷을 입지 않은 벌거벗은 몸임을 알았을 때 나는 이제부터 성경말씀을 깨달아야 하는데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반면, 멸망의 길은 넓고 평탄하여 많은 사람이 넓은 길로 간다고 했듯이, 기독교인들 모두는 성경을 깨달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무조건 하나님 예수님만 잘 믿는 신앙에 그저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된다는 신앙이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나태한 신앙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기독교목사들의 달콤한 화술에 그만 속으시고 하루속히 성경말씀을 알아야 구원과 영생을 받습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