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2-6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 이어 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대한 예언으로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목회자들의 가감된 “신학교리”로 먹음직도 보암직한 거짓된 말씀을 받아먹은 결과 적그리스도에게 사로 잡혀가게 될 일을 앞에 놓고 “비유비사”로 그 상황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사야가 받은 말씀의 시작은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진노하시고 책망하시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했다고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마음에 통곡이 나와야 합니다.
이 말씀이 “하늘과 땅”이 어떤 인간의 “존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늘”이 들을 수 있고 “땅”이 귀를 귀우 릴 수 있겠습니까? 이같이 “하늘”은 푸른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의 개념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목회자들을 “비유”하고 귀를 기울이라는 “땅”은 기독교인들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창조”는 자연계 “천지창조”를 비유하여 “땅”의 속한 어둠의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여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하신 창세기의 천지창조(天地創造)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시대에는 비록 아직 이스라엘민족이 이방 앗 수르와 바벨론에 정식으로 옮겨지기 전이긴 하나, 백성들이 때때로 범죄 하므로 이방에게 자주 예루살렘이 침략을 당하는 형편이라 곧 북 왕국이 사로잡혀갈 것입니다. 때문에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었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오늘날 기독교를 비유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 하여 그들의 땅이 황무하게 된다는 이사야의 이 모든 예언들은 곧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모형이고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기독교인들이 그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7-9 너희 땅(교인)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몸)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마귀)에게 삼 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부패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노아홍수 때와 같이 소돔고모라 때와 같이 유대나라 때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에도 다 쓸어버리고 조금만 남겨두신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를 따라가는 택한 자들 “씨”만 남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두 거짓목회자들에게 다 사로잡혀가고 땅이 황무하지만, 그중에 딸 시온(주의 백성)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징 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조금 남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전 세계적인 기독교인들 가운데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아주 극소수의 무리들은 하나님께 부름 받아 나올 자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모두 짓밟히고 소수의 무리만 구원의 반열로 남을 것이므로 이들이 천국을 회복하며 만백성을 구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다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받을 때 모두 다 진멸되고 불에 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멸망의 와중에도 롯과 롯의 두 딸은 천사의 손에 이끌려 구원받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다시 회복할 적은 수의 “씨”(혈통)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리 범죄하고 아무리 그 심판을 무섭게 받는다고 할지라도 완전한 멸망이란 결코 없습니다. 반드시 그루터기는 조금남아서 회복역사를 보여주시는 것이 성경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2000년 전의 예수는 멸망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요 오늘날의 “실존예수”는 구원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즉 그 그루터기는 조금 남겨 두시어 오늘날도 명맥은 이어져서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받을 때 롯과 롯의 두 딸은 살아남아서 그들이 근친상간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자손인 모압과 암몬을 낳았습니다. “근친상간”이란 같은 “씨”(혈통)로 낳음을 받은 것을 “근친상간”이라는 것입니다. 그처럼 모압과 암몬은 부끄러운 존재이지만, 다니엘 11:41 절에서 그 모 압과 암몬 자손 중에서 존귀한 자들은 다시 그 멸망의 손에서 벗어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범죄 한 백성이라면 그중에 존귀한 자들은 남은 자들인 오늘날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 난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 중에 하나님이 겨우 남았다고 하는 “씨”(혈통)들입니다.
이사야 1:10-17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 찌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찐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이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 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람들은 날짜와 절기를 지키며 금식을 하며 기도를 많이 하며 십일조와 헌금 등을 많이 바치는 일 등, 여러 가지 계명과 교회 제도들을 지키는 외형적인 것이 신앙의 본질인 줄 착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이 모두 가증스럽다고 하십니다. 많이 기도하고 많이 바치는 것들이 모두 짐만 되고 내 마당만 밟고 간다고 책망하십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으며 많이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은 도무지 받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거짓된 “비 진리”의 말씀으로 “다른 신 다른 하나님”을 섬기며 그 손에는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피”가 가득하다 함은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모두 거짓된 “비 진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계시록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 하더라,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손에는 거짓된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하셨으나 기독교인들은 그리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서로 사랑하는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려운 사람을 물질적으로 돕는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세상사람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윤리 도덕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겐 그 이상의 차원 높은 고등 학문적 사랑이 반드시 요구되고 있는데, 그것이 예수님이 명하신 궁극적인 “아가페사랑”이며 하나님이 명하신 공의와 인애의 본질이며 고등 학문적 사랑입니다.
고등 학문적 사랑이란 영적 사랑이요, 구원과 영생을 안겨주는 진리에 대한 “아가페사랑”입니다. 즉 진리의 말씀을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구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의 말씀을 나도 갖지 않고 너도 갖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고 동산 각종 나무열매를 임으로 먹으라고 했는데 그 율법을 범했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은 주의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동산 각종나무 열매를 임으로 먹으라는 율법은 세상의 가르침 등을 무시하지 말고 선별적으로 반드시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웃을 내 몸처럼 바라보는 진리에 대한 “아가페사랑”(영혼구원)이 없고 자기만 사랑하는 탐욕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1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 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위에서 선악과 범법에서 알아보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것이 죄의 본질인데, 하나님은 그에 대해 우리와 변론하자고 하셨습니다. 변론을 통해 진리의 말씀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변론을 통해 진리를 알게 되면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 변론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알고자 하는 노력과 끊임없는 말씀묵상을 통해 스스로 변론할 수 있습니다.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하나님과 변론을 하고 순종하여 진리를 깨달으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고, 거절하여 배반하면 멸망하리라 했습니다.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는다고 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의 실체인 “말씀”이 하나님의 성전인 내 몸 안에서 “안식”하시기 때문에 천국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1:21-23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 도다.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었고, 공평이 충만하고 의리가 거하던 곳에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라고,하셨습니다. 신실한 성읍이라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진리의 말씀으로 깨끗이 보전해야 하는데 신실하던 성전이 더러운 기독교목회자들의 “비 진리”의 “신학”의 말씀으로 쓰레기통을 만들어 창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체이신 “말씀”을 죽이는 목회자들이 모두 “살인자”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실하지 못한 창기는 그 음녀들이 소유한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다”고 한 것입니다. “은”이나 “포도주”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뜻하는데, 너희들이 소유한 “비 진리”의 “은”은 찌기가 되었고 “포도주”는 물이 섞였다고 한 것은 이는 곧 하나님의 “진리와 사단의 “비 진리”가 섞인 가감된 “비 진리”말합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목회자들은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할리가 없고 뇌물이나 사례물 받기를 좋아할 것이므로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였다고 했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했다”라고” 한 것입니다.“고아와 과부”는 생명의 말씀이 갈급하여 기독교에서 진리를 찾아 떠나는 자들을 오히려 이들을 이단이라 핍박하고 저주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24-27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 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 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창기로 만든 사단에게 원수를 갚으신다고 했습니다. 창기의 찌끼를 청결하게 하고 혼 잡물을 제하여 처음과 같이, 본래와 같이 회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되고 그 귀정 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하셨으므로 하나님의 공평과 의가 진리이며 구속의 절대적 가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기독교에서 명하는 신앙의 여러 가지 의식과 제도들은 모두진리가 아니며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1:28-31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상수리나무는 백 향 목이나 포도나무 같은 동산의 각종나무들을 말합니다.
이 나무들은 실제의 나무들이 아니라 동산 등은 목자와 교회와 제단 등 신앙공동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이 선택한 신앙의 길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임을 뜻합니다. 즉 기독교인들의 신앙공동체는 멸망당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뱀의 후손들이 주는 기독교목회자들의 선악과를 받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상수리나무의 잎사귀가 말랐다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의 “비 진리”로 인해서 “진리의 말씀”이 매 말랐다는 것이요 “물 없는 동산”역시 “진리의 말씀”이 매 말랐다는 것입니다. 상기의 말씀을 깨달은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진리의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사야 1장 말씀을 “비유비사”로 거울과 같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상용어로 기록되었으나 모든 말씀이 “비유비사”로 기록하시어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택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탄에게 속한 자들은 보아도 알 수 없게 깊이 감춰진 비밀의 말씀입니다.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니라 택한 자들을 위하여 “비유”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택하신 백성들을 하루속히 그곳에서 나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귀 있는 자는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하루속히 그곳에서 나오셔야 “진리”를 만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