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다가 늙어서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다면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리고 명확히 대답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는 사람이나 살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도 생각과 믿음의 차이가 좀 있을 뿐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온 곳과 가는 곳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확실히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가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죽으면 영혼이 떠나 천국이든 지옥이든 가는 곳이 내생인데, 이미 내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전생은 당연히 현생이건만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전생이 없다면 현생이 없고, 현생이 없는 내생 역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심각한 문제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내생(來生)은 철저히 믿고 있으나, 인간들이 온 전생(轉生)은 강력히 부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기 눈에 나무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나무의 가지와 열매는 있으나 뿌리는 없다고 주장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기독교인들이 전생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들이 믿고 가려는 내생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전생 뿐만이 아니라 죽어서 간다는 천국이나 지옥이 어느 곳에 있는지 그리고 그곳은 어떤 곳이며, 어떤 자들이 들어가는지 조차도 확실히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체가 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진실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진실해질 수가 없고 천국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으로는 진실하길 원하며 진실을 추구하며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실하기가 힘들고 어려운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들은 태어날 때 죄인의 몸으로 태어나 본질 자체가 욕심이요 거짓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진실하게 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며 신앙생활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고요한 침묵 속에 있다가,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생각이 발동되면 갖고자 하는 탐심이 본색을 드러내고, 마음은 요동칩니다. 죄가 문에 엎드리는 순간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때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게 하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게 하는 것입니다(약1:15)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안에 있는 욕심이 바로 죄이며 죄 때문에 죽게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기독교인들이 욕심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욕심은 어떻게 버리는지를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신앙생활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며 욕심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요? 놀라운 것은 욕심의 근원이 바로 무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인간들의 모든 욕심은 진리에 대한 무식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무식이 바로 죄라고 말하는 것인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라는 것을 또 모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욕심의 근원은 바로 자기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욕심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진실한 삶을 살지 못하고, 거짓과 외식된 삶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욕심과 탐심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욕심이 없는 자들, 즉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의인들은 천상으로 올라가고, 이 세상에 절대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전생에서 욕심과 탐심으로 인한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생에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면 천국으로 들어가 윤회하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자체가 모두 죄인이요 욕심의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신학 교리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원죄는 아담으로부터 이어받은 죄가 아니라, 자신이 전생에 지은 죄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 절대로 타인이 지은 죄를 자신에게 전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전생에 쌓은 업, 즉 자신이 행한 선업이나 악업을 현생에서 복이나 화로 받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행한 선이나 악 때문에 자신이 복을 받거나 저주를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전생에서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복도 받고 저주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전생에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모두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생에 지은 죄업과 현생에서 지은 죄를 모두 깨끗이 씻으면 천국으로 들어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해 아래 있는 존재들, 즉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죄인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생에 있던 죄인들을 이 세상에 다시 보내주신 것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인간들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 즉 욕심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셨다는 삯군목사들의 말만을 믿고 의인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욕심을 버리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를 대속하여 주신 것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고 그의 말씀을 듣고 영접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많은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를 구주로 믿고 따르면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먹으며 날마다 죄를 씻은 자들은 오직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전생에 지은 죄와 현생에 지은 죄를 씻기 위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생에 지은 죄나 현생에 짓는 죄와 전혀 상관없이 예수를 믿으면 기독교의 “신학“에 의해서 죄 사함을 받고 모두 의인이 되었다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인되었다는 것은 기독교의 신학 교리이며 목사들의 말이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구원을 시키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전생과 윤회도 모두 부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