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39~43 예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니이다. 예수께서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무덤으로 가시니 무덤은 굴로 되어있고 그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묻혀있는 무덤에 도착한 후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놓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마르다가 주여 죽은 지가 벌써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고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 오라비 나사로가 죽어서 장사한지 나흘이나 되어 시체가 이미 부패되어 냄새가 나기 때문에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도 살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가 하는 말을 들으신 후 마르다 에게 네가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책망조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무덤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 하나이다라고, 아버지께 감사를 한 후 이어서 아버지께서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주신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때를 따라 항상 들어주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이렇게 행하시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아버지께서 나사로를 병들게 하여 죽게 만드시고 죽은 나사로를 예수님을 통해 살리게 하시는 것은 예수를 불신하고 있는 자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역사하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무리들에게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시니 죽은 나사로가 일어나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나사로의 얼굴이 수건에 싸여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시니 나사로는 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인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충분히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육신이 죽은 나사로의 몸을 살리신 것일까요?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은 깊이 잘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했을 때 제자들에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또 나사로에게 가실 때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었기 때문에 내가 깨우러 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모두 일상용어로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 영적으로 비유비사로 깊이 기록된 말씀이므로 영안이 열리지 절대로 해석을 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말씀 속에는 기독교인들이 생각지 못하는 엄청남 비밀이 숨겨있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알아야 합니다. 상기의 본문말씀은 오늘날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의 실상을 그대로 나타내시는 것이며 이런 것이 모두가 비유비사로 감추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완전히 죽었다면 예수님께서 살리러 가자고 말씀하시지 깨우러 간다고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사로의 영혼이 잠시 잠들어 있는 나사로의 영혼을 깨운 것이지 육신이 죽은 나사로의 몸을 살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육(肉)의 몸을 기준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신경에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이 사는 것을 믿는다고, 예배드릴 때마다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기독교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靈)을 기준하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내 부친을 장사하러 잠시 다녀오겠다고 할 때 예수께서는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21~22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 사람 안에 혼은 존재하나 영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혼의 존재들을 모두 죽은 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야고보서 2장을 통하여 비록 육은 살아있으나 영이 없으면 모두 죽은 몸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죽은 육체의 몸이 아니라, 혼의 생명을 영의 생명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깊이 감춰진 하나님의 말씀은 영안이 열렸어도 사람의 언어로는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조차도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실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의 말씀은 나사로 개인 한 사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비유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이 깨달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육신에 속한 기독교인들을 무덤으로 비유합니다. 그러면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무덤의 실체는 생명이 없는 육에 속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 무덤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8) 그리고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은 것은 기독교 비 진리 신학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하며, 장사한 지 나흘이나 되어 시신이 부패되어 냄새가 난다는 것은 혼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부활하려면 애급, 광야, 가나안, 안식 이렇게 4번을 통과해야 혼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완전히 부활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도 애급, 광야, 가나안 이렇게 3일이 되어야 육의 존재에서 영의 존재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사로가 완전히 죽기를 이틀을 더 기다렸다(요11:6)가 나흘이 돼서야 나사로를 살리려 가신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무덤에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시는 것은, 기독교 비 진리 신학에 갇혀있는 나사로 기독교인에게 탈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수족을 풀고 얼굴이 수건에 싸여 있는 것을 벗고 나오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비 진리의 거짓된 말씀의 옷으로 신앙의 육체가 썩어 냄새가 난다는 것이며 온몸을 비 진리의 옷으로 감고 있던 거짓된 것들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거짓된 옷(신학)들이 벗겨지는 것을 비유비사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하루속히 거짓된 기독교 신학의 교리의 틀에서 벗어나 진리를 소유한 참 목자를 찾아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영접해야 무덤 속에 갇혀서 썩는 냄새가 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육의 생명이 영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이 이런 말씀을 깨달아야 기독교를 탈출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하는 이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는 사후에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