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짐승의 밥그릇인 말구유에 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요1:14)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존귀하신 왕 중 왕께서 어찌하여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만 했으며 구유에 뉘이셨는가? 여기에는 엄청난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비밀이라서 그만큼 고도로 난해한 암중모색을 요구하는 사안이므로 사실 밝히기도 주저되거니와, 기독교인들 역시 생각을 대폭 업그레이드 해주실 것을 먼저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짐승의 수 666의 실체가 무엇인지부터 확실히 파악한 연후래야 가능한데, 짐승의 수 666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자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666이란 간단히 말해 사단마귀의 왕국입니다. 사단마귀는 처음엔 옛 뱀으로 불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옛 뱀의 후손을 일컬어 용이라고 하는데, 이 용이 곧 666입니다. 옛 뱀, 용 이러한 것은 짐승입니다. 따라서 666은 짐승의 왕국이며, 짐승의 왕국을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오늘날 기독교왕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내가 예수라고 하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 독버섯처럼 창궐해서 택한 자라도 미혹하고 있는 때이기 때문에, 추종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칭 예수왕국 혹은 적그리스도왕국이라고 부릅니다. 왕국에는 계급과 서열이 있습니다. 왕이 있고 각료들이 있고 백성들이 있는 것입니다. 즉 짐승이 3등급으로 있습니다. 창세기 6일 천지창조기사는 지나간 옛적 자연계창조가 아니고, 오늘날 이 땅의 어둠의 존재들을 하늘의 빛의 존재로 창조기사가 창세기 6일 천지창조입니다.
자연계 사물을 비유로 짐승차원의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는 것을 말씀하신 기록이므로 성경은 비유비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일 천지창조기사에서 창조 다섯째 날에 물고기와 새를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 기는 짐승과 걷는 짐승과 가축과 여자 남자 순으로 지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섯째 날에 지어진 물고기와 새의 출발점은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듣고 모여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물고기로 표시했는데 창조 다섯째 날의 물고기와 새는 기독교인과 기독교목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창조 여섯째 날 전반에는 기는 것, 땅의 짐승, 가축이 지어졌고, 그 후에 여자, 남자 이렇게 등급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물고기와 기는 짐승과 땅의 걷는 짐승은 실제로 짐승들이 아니라, 어둠의 존재들인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비유로 하신 것입니다.
욥기 12:7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런 것들이 어둠의 존재들인 사람들이 아니라면 어떻게 물어볼 수가 있겠습니까?
계시록 13:18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그러므로 666의 숫자는 6일 천지 창조에서 짐승의 수가 셋이 있습니다. 해서 666인 것입니다. 그런데 666의 왕국에는 서열이 있는데 가장 서열이 낮은 물고기는 단 자리 6이고, 그 다음이 기는 짐승 십 자리 60이고, 그 다음이 “땅”의 짐승 백 자리 600입니다. 그래서 666인 이들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에 자칭 예수라고 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뱀의 후손이며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적그리스도를 세우신 것이며, 이를 창조라고 합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세우셨는가? 다섯째 날의 물고기는 기독교인과 목사를 말하는데 그만큼 성경을 아는 영적 수준이 제일 낮은 백성을 뜻 하고, 그 다음이 한 단계 높은 기는 짐승 걷는 짐승인데 주로 거짓된 기독교에서 출 애급(탈출)해서 나온 광야 교인들 즉 기독교인들이 말씀의 갈증을 느낄 때 주로 찾아가는 곳이 이와 같은 이단교회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애급이라는 기독교에나 광야로 출 애급(탈출)한 이단교회에서 안주할 곳으로 생각한다면 둘 다 멸망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라는 애급교회에서 출 애급 해서 광야교회에서 안주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광야교회 인 이단교회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모진훈련과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연단의 과정을 거쳐 가나안에 입성할 때가 가축(양)의 상태로 거듭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영적상태가 양들이기 때문에 가축의 영적상태인 것입니다.
그 다음은 가축에서 거듭나면 여자의 영적상태가 되는데 이 여자를 정결한 처녀라고 하며 또는 동정녀마리아 또는 슬기로운 5 처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인간의 영적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받는 창세기 6일천지창조인 것입니다. 고전 11:3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이렇게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그 위에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6단계가 창세기 6일 천지창조이며 최종목표이며 제 7일에는 하나님께서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 몸 안에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정리를 한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물고기의 영적상태에서 기는 짐승으로 거듭나야 하고, 기는 짐승은 걷는 짐승으로 다음은 가축으로 다음은 여자 다음은 남자 이렇게 6단계로 거듭났을 때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덧 부쳐서 말씀드릴 것은 가축(양)의 상태에서 거듭나면 여자의 영적상태인 인간이 되는데 이 여자(인간)는 정결한 처녀가 성령의 잉태로 아들을 낳는거와 같이(마리아가 예수를 낳는 것) 다시 말해 여자(인간)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영적상태인 인간이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고후 11:2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한다고 합니다. 이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자를 동정녀마리아라고 하며, 이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생각조차 못하는 생소한 말씀이라 기독교인들은 이해를 못 하시겠지만 필자는 이러한 경로를 다 지나왔기 때문에 이런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오늘날 기독교도 짐승이요 666도 짐승입니다.
그런데 영생인 예수님, 그분은 기독교단의 짐승과 666의 짐승 모두를 짐승이 더는 아닌, 하나님 형상의 사람으로 창조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시는 분입니다.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선 예수님은 이같이 영적 수준이 낮은 짐승으로 호칭되는 기독교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짐승의 우리인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섯째 날에 물고기라고 하는 짐승의 자리로 오셨는데 다시 오시는 이유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인 666 중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자기 백성들인 물고기의 영적상태인 기독교인들을 구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짐승들이 머무는 마구간에서 짐승들이 먹이통 구유에서 태어나셔야만 했습니다. 말씀을 아는 수준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사로잡아 갈 수 있는 법입니다. 오늘의 강자는 광야에 있는 적그리스도이며 약자는 애급의 기성교단입니다.
오늘날의 실존예수님도 기성교단(물고기)에서부터 시작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기성교단은 약자이므로 강자에게 사로잡혀가는 형국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실존예수님도 서러운 신앙체험을 단단히 하시게 됩니다. 이것이 뱀의 후손(적그리스도)에게 여자의 후손(실존예수)의 발꿈치를 상하는 입장입니다. 발꿈치의 상함은 약간의 부상으로써 곧 쾌유될 수 있는 상황에서 대 역전을 노리게 되는데 그 대 역전이 곧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일(창3:15)입니다. 머리의 상함은 치명적이므로 오늘의 실존예수님이 적그리스도의 유린기간이 지나면 즉시 진리의 새 말씀으로 반격으로 돌입하시게 됩니다. 그 시작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본격적 아마겟돈 영적전쟁에서 백전백승하여 택함 받은 자기 백성들을 완전히 찾아오시고 마귀는 잡혀서 무저갱에 던져집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하시기 위해서 자기 백성의 영적 수준인 짐승의 마구간에 구유에서 탄생하시게 됩니다. 구유라는 것은 짐승이 먹는 밥통인데 그 짐승들이 예수님이 먹어야 할 밥통(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절대로 알 수 없이, 즉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전혀 알 수 없이 세상이라는 애급교회에서 종노릇 할 수밖에 없는 비참하고 처절한 짐승일 뿐입니다. 그 짐승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짐승의 자리로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예수님입니다.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자가 없는, 그 영적 수준이 아무것도 모르는 무의식의 짐승이므로, 그 짐승을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 형상의 사람으로 구원하시기 위해서 반드시 짐승의 마구간의 여물통으로 오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