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죽음,부활)

거듭나면 하나님은“도적”같이 임하신다.

제라늄A 2020. 6. 7. 04:21

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도적”과 같이 그 몸안에 임하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그때에는 자기 을 찾아 입고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란 무엇을 “비유”한 말씀인가? 

​계 19:13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같이 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옷”이라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옷을 입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대단히 진노하시며 바깥 어두운 지옥불에 내 치십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마 22:12-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예복”을 대단히 중요시 하므로  오늘날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잘 몰라도 하나님과 예수님은 잘 믿는다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예복을 입은 자요, 하나님의 말씀의 “예복을 입은 자는 예수와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예수와 똑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들이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반드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그 “말씀의 예복을 찾아서 입어야 하는 것이 자기의 “옷이요, 이것이 신앙인들의 참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옷을 찾아 입은 자가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곧 사도들과 선지자들 앞에 부끄러운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와 사도들과 선지자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의 예복”의 “옷”을 입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복”을 입은 자는 항상 깨어있어서 근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 24:42-43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살전 5:2-6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이와 같이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이 경고는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마지막 종말 때에  주님이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재림으로 오시므로 기독교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재림 예수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종말론을 강조하는 목회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상기의 말씀은 마지막 세상이 끝나는 종말에 재림예수님이 “도적”같이 아무도 모르게 재림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가 혼인을 하기 위하여 하늘의 신랑을 기다리는데  신랑이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입니다.“슬기로운 5 처녀”란 뜻은   고전 14:19 깨달은 “다섯 마디”란 말씀을 “슬기로운 5 처녀”라 “비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를 “슬기로운 5 처녀”또는 “정결한 처녀”또는 “동정녀 마리아”라 말씀하시는데 이들에게 하나님이 “도적”같이 임해오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도적”같이 임해 오신다는 뜻은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실체이신 말씀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이 그 몸 안에 도적 같이 임해오시는 것을 하나님도적 같이 임해오신다고 비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다리는 하나님은 이 세상이 끝나는 종말에 재림예수께서 구름 타고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오신다는  말씀은 모두 비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오묘하게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태산 같은 말씀이 바다의 물이 노아 홍수 때와 같이 차고 넘쳐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그 물(말씀)을 마시면 그 영혼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아 거짓된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해서 이교회 저 교회 찾아다니는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만나 말씀의 예복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의 옷(예복)입으면 즉 정결한 처녀”와 같이 준비된 자의 몸 안에 말씀이 계시므로 이것을 주님이 도적 같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말씀) 준비된 자에게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를 촉구하고 계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재료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을 깨닫는 자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건축이 완성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임하셔서  그 성전 된 몸 안에서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곱째 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목적은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아는 것이 “말씀의 예복을 찾아 입고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깨어있는 자가 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깨우는 것을 말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살려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자를 깨어있는 자들이라 하였습니다. 자기 옷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옷을 입고있는 것을 말하며 의의 옷이요, 진리의 옷이요, 빛의 옷이요, 세마포 옷이요, 예복을 입은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의 옷”“겉옷”도 있고 “속옷”도 있으므로  말씀도 표면적인 “말씀”이 있는가 하면  이면적인 “말씀”도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 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일곱 인으로 봉했다는 것은  성경은 “안팎”으로 “비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은 “일곱째 날”로 거듭난 예수님과 같이 거듭난 자들이 읽을 수 있지  아무나 읽을 수 없도록 봉해놓은 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주시해서 보아야 할 문장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옷”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의 옷을 입지 않으면 천국에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옷을 대단히 중요시하며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시기 때문에 예복이라는 이 의 진정한 의미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예복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원문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