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준은 예수

하나님께서 구원과 심판을 아들 예수에게 맡기셨다.

제라늄A 2021. 3. 29. 21:48

요 5:22-29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이세상의 심판을 모두 아들 “실존 예수님”에게 맡기셨는데  그 이유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이신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도 공경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구원하는 권세를 오늘날 “실존 예수님”께 모두 위임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아들 “실존 예수님”에게도 공경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000년 전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님을 믿고 공경하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님”을 공경치 아니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경치 아니하는 것이라고 상기의 본문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인 기독교인들은 2000년 전 유대인들과 똑같이 과거에 오셨던 유대인의 “실존 예수님”이나 앞으로 구름 타고 오실 재림예수님은 잘 공경하고 믿으나 하나님께서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 한국인 구원자 “실존 예수님은 공경은커녕 믿지도 않으며 오히려 이단으로 배척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 한국인 “실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공경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 1:1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없으신 으로만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직접 육체를 입고 오셔야만 합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현제의 실존 예수님이십니다.  계 1:18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면 어느 때와 시기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의 사람으로 육체를 입고 실존으로 오셔야만 그 나라의 사람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나라의 사람으로 육체를 입고 "실존"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실 때는 그 나라의 백성의 한 사람으로 오시기 때문에 서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구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한국인의 “실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하나님께서 보내신 실존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이미 영생을 얻었다는 현제 완료형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기의 본문말씀을 보면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실존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실존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어야 육체는 살아 있다 하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데 아들의 “음성”은 현재 살아계신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 계셔야 그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데 만일 살아계신 “실존 예수님”이 지금 없다면 그의 “음성”은 들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소유하려면 살아계신 오늘날 “실존 예수님”은 반드시 계셔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없다면 “실존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들을 수가 없고 따라서 “죽은 자들이 살아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 것을 너희는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죽어서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는데 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자들이 어떻게 아들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죽은 자와 무덤”이 영적으로 어떤 무덤을 말하고 있는지를 모르면 이 말씀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안"이 열려야 볼 수 있다는 말씀이 실감이 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죽은 자는 육신이 “죽은 자가 아니라 육신은 살아있으나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모두 죽은 자”라 말하며 무덤은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못하도록 덥고 있는 기독교의 비 진리 신학을 무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육체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인간의 생명은 모두 “죽은 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마8:22)  그러므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기독교 신학의 각종 교리와 교회 규범들 때문에 진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님”도 기독교인들이 이단으로 배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구원자로 오신 한국인 “실존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다면 기독교라는 “무덤”속에 갇혀서 죽어있는 영혼들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존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바로 이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인 “실존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셔서 계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며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 말씀하시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무엇이 “선한 일”이며 무엇이 “악한 일”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선과 악은 인간의 윤리도덕이나 교회의 법 혹은 세상의 법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일”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오늘날 “실존 예수님”을 믿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이 “선한 것이며 악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 구원자 실존 예수를 믿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이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죽은 영혼이 살아나지만  오늘날의 구원자를 믿지 않고 “실존 예수님”을 배척을 하면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과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구원자로 보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한국인 “실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느냐 불신하고 배척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반드시 죽어가는 이웃을 구원해야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 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인간의 윤리도덕의 “사랑”은 언제나 조건적이고 부분적인 댓 가를 바라는 “사랑”인 것이며 이 “사랑”은 필요와 상태에 따라 언제든 변화하는 것이 인간의 윤리도덕의 “사랑”(필로스)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육신의 “죽은 자”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리는 것을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인 것이니  이 “아가페 사랑아니고는 절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인간의 죽은 자”들이 살릴 수 없는 것이며 하늘의 뜻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루어져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생명의 반차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누구를 죽은 자”라고 하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없는 "육신의 생명"은 모두 “죽은 자”라고 합니다.
마 8:21-22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지금 죽어 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려고 하는 육체가 살아있는 사람도 모두 “죽은 자라 말씀하고 있고 있는 것은  육체는 살아있다 해도 그 육체 안에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 “산자”인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나 예수님은 지금 육체가 살아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는 기독교인이라 해도  아직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없는 자는 성경에서는 모두 죽은 자”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과 땅의 진실과 거짓이 "사랑"이라는 글자가 한글성경에는 "사랑"이라고 번역되어 있어 하나님의 “아가페도 사랑이요, 인간의 필로스도 사랑인 것이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육신의 사랑을 가지고 의롭다 함을 입는 것이요 그 육신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믿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이란 “죽은 자”들의 행실만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을 통하여 절대 인간 육신의 사랑으로는 살아 날수 없음이며  하나님의 사랑 즉 “아가페 사랑”만이 죽은 영혼을 살리는 거듭남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의 몸 안에 만 있는 것이며 이 아가페 사랑을 소유한 자들은 반드시 죽은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구원하여 같은 아가페 사랑”으로 살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인 것이며 두 계명인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거듭나고 옆으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여 생명을 주는 것이 십자가의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생명을 낳고 낳음이 이어져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아들들의 “아가페 사랑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은 이 아들들의 아가페 사랑”을 찾아서 그 씨(혈통)로 반드시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가페 사랑의 소유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며 3번씩이나 아가페 사랑을 물으시니 베드로조차 이 “아가페 사랑을 소유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어이없다는 듯이 내가 주를 사랑하는지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렇게 인간의 윤리도덕의 사랑”으로 대답할 만큼 어렵고 어려운 생명의 소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거듭난 자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네가 영적으로 어린 자들을 먹일 때 네가 영적으로 성장한다 하셨으니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자는 어떠한 자이며 이웃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란 거짓된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한 나그네, 고아, 과부처럼 오늘날 기독교 삯군목사에게서 벗어난 자들 즉 심령이 가난한 말씀의 갈급한 자들을 말씀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롬 13;8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많은 “율법”이 있어도 이웃을 구원함으로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사랑”의 “빚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모두 이룬 자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율법”이 있는데 죽어가는 이웃을 구원하므로 모든 “율법”이 다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롬 13:10 ...사랑(아가페)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러나 그 “사랑”이 오늘날기독교 안에 있어야 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인데 기독교 안에는 그런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갈 5: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 사랑(아가페)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며 성경의 모든 “율법”이 “네 이웃을 사랑하여 네 몸과 같이 만들라”는 이 한 마디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하나님의 “율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만드는 것”이 곧 온 “율법”을 이루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여 구원받은 자신의 몸과 같이 만들어야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입니다.“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은 구원이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윤리 도덕적으로 이웃을 사랑해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만들어야 모든 하나님의 “율법”이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며 십자가를 상징하는 말씀으로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을 내 몸 안에 저축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성한 자에게는 말 3:10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몸)에 들여 나의 집(성전)에 양식이 있게 하라, 고 명하시는데  이 말씀의 “창고”는 거듭난 자의 “몸을 하나님의 “창고”로 “비유”로 말씀한 것이고 “창고”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의 몸 안에 짓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요 1:1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몸을 “비유한 “창고”에 하나님의 말씀을 저장했다는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거 하신다 는 말씀같이  하나님의 성전인 “창고”(몸)에 하나님의 말씀인 “양식(말씀)이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양식이 내 몸(창고)에 있어야 그 말씀으로 이웃의 죽은 영혼들의 죄를 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장성한 자로 거듭나면 장성한 자의 몸(창고)에 있는 말씀의 양식으로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생명의 말씀으로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이 영혼 구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받고 살기 위해 반드시 이웃을 내 몸 같이 구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구원을 빚진 자로서 그 빚을 갚아야 완전한 구원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딤전 4:15-16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라 너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같이 이웃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양식을 먹여서 이웃을 내 몸같이 만들어야 내가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구원의 빚을 완전히 갚을 때 내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십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