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준은 예수

※ 길 잃은 양이 되어야 구원을 받는다 ※

제라늄A 2021. 1. 16. 21:24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에도 올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1:8)"알파와 오메가"란 뜻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항상 "실존"으로 계시다는 뜻입니다. 2000년 전에“실존예수님”이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을 때는 예수님을 영접한 12제자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인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의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는 그 믿음이 “우상 예수”를 믿음으로 모두 심판의 대상이라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실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이 심판의 대상이었듯이, 20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인들도 “한국인의 실존 예수님”이 계실 때 영접하지 않는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거짓된 기독교 "신앙"의 교리와 유대교 "신앙"의 교리가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약성경 "출애굽기"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신앙에서 "출애굽"해서 탈출한 것 같이 오늘날도 기독교인들이 잘못된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출애굽"해서 탈출하여 “길 잃은 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100마리 양”가운데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다니시다가 그“양”에게 나는 “99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 양”인 너를 더욱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마18:13) 오늘날"실존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썩은 양식을 먹고 있는"길을 잃지 않는 양"들은 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하시며, 오늘날 "애굽"이라는 세상의 거짓된 기독교로부터 "출애굽"(탈출)해서 도망 나온 자들이 “길 잃은 양”으로서 방황하는 “고아 과부 나그네”들이 구원의 대상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이 찾으시는 자들이 바로 기독교를 탈출한 “길 잃은 양“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필자는 계속해서 반복하는 말씀이지만 구약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예언서입니다. 오늘날“실존 예수님”만이 실상입니다. 오늘날“실존 예수님”만이 실상이기 때문에  오늘날“실존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한 기독교를 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이 모두 그 양식을 먹고 있는 "길 잃은 양"들입니다. 아주 자랑스럽고 대견한 예수님의 어린양들이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2000년 전 예수님이 주신 복음으로 이미 배불러 있고 만족하여 언제까지 안주한다면 그들은 오늘날“실존 예수님”이 찾아 나서시는 “길 잃은 양”이 아니라"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천국 "비유"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같이 영적인 거지가 아니며 날마다 연회를 즐기는 저주받은 부자들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입니다. 저주받은 말씀의 부자는 먼저 되어버린 자들이요, 영적인 부자들이요, 영적 교만한 자들이요, 배불러서 평안을 외치며 아버지의 집에서 일락을 누리는 탕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첫째 아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즉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 오신 예수님의 복음에 만족해서 언제까지 집(성전)을 나갈 줄 모르는 자들은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아니며 “길 잃은 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집에 남아 있는 첫째 아들이 되고 길을 잃지 아니한 양이되는 것이 좋은가?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집을 뛰쳐나간 둘째 아들이 되어야 하고 “길 잃은 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실존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일곱 배로 빛 밝은 진리의 새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고 헤매어본 자가 아니라면, 말씀에 대한 목마름으로 심령의 가난함을 느껴본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실존 예수님”이 주실 진리의 새 말씀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자들은 유대교에 고착해서 예수님을 이단으로 핍박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잡아 죽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실존 예수님”때도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자들은 진리의 새 말씀을 도무지 듣지 못하고 “실존 예수님”을 이단으로 핍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실존 예수님”은 언제나 세상에서 출애굽(탈출)한 “길 잃은 양”들인 “고아, 과부, 나그네”들에게만 찾아가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무리지어 남아서 길을 잃지 않고 있는 자들에게는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왜 거짓된 기독교 "신학"교리에 목을 매고 있으면서 출애굽(탈출)해서"길 잃은 양"들이 되길 두려워하는가?  왜 기독교에서 뛰쳐나가기를 두려워하는가?  왜 심령이 가난한 자를 조롱하고, 여기저기 문전걸식하는 거지 나사로와 같이 이교회 저 교회로 진리를 찾아 구걸하기를 수치스러워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대형교회에, 기라성 같은 유명목사들이 포진해 있는 전통교회에 예수님이 오시는 줄 아는가? 예수님은 그런 화려한 곳으로 절대로 오시지 않습니다. 그런 악명 높은 곳으로도 “실존 예수님”은 절대로 오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길 잃은 양”들에게만 오십니다. 집을 나간 자, 성전을 나간 자, 교회가 없는 자, 부모가 없는"고아" 남편이 없는"과부" 본향이 없는"나그네" 교회가 없기 때문에 길을 잃고 배고픈 어린양에게만 실존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출 22:22-24 너는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며 너희도 애급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외롭게 혈혈단신“길 잃은 양”들에게만 영의 양식을 배부르게 먹여 주십니다.“길 잃은 양”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만나주시는가?

예수님은 천국 비유에서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마25:40) 예수님의 진리의 새 말씀을 대신 전하는 자가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인데, 예수님은 곧 이러한 소자를 통해 진리의 말씀으로만 만나주십니다. 바로 천국 "비유"에 나오는 형제 중 지극히 작은가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 증거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받는 자는 그 말씀을 깨달은 자 밖에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계2:17)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오셨을 때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었으나 그 말씀을 영접 한자는 오직 12제자 외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여러 사람과 동행했지만 예수의 음성을 혼자만 들었지 다른 사람들은 천둥 우레 소리로 들었다고 한 거와 같이  말씀을 받고 깨달은 자만이 그분이 누구신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예수님의 음성을 잘 듣고 그 말씀을 깨닫고 영접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