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말씀 해설

십일 동안 환난을 받는 자들이란?

제라늄A 2021. 5. 19. 20:50

계시록 2:10~11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상기의 말씀은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원문으로는 “기누 피스토스 아키 리 다나로”로 기록되었는데 직역을 하면 “너는 죽기까지 믿음(말씀)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길로 가는 자는 반드시 사탄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과 환란이 있는데 너는 죽기까지 말씀으로 극복하고 승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려고 교회 일에 열심을 다해 충성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충성 봉사해야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 어느 누가 받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생명의 면류관은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과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을 모두 잘 참고 극복한 자들이 주께서 그들이 옳다고 인정할 때 받는 생명의 면류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천국은 이러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자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오늘날 거짓된 기독교를 탈출하여 진리의 길에 들어선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신앙인들에게 경각심을 울려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거짓된 기독교에서 탈출한 진리의 길에 들어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죽을힘을 다하여 죽도록 충성하는데 어떻게 충성하느냐 하면 죽도록 사력을 다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허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길은 가는 자에게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는 말씀인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입니다. 이 말씀은 아무나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택한 자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거짓된 기독교를 벗어나 진리의 길에 들어선 신앙인들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2:8~9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오늘날 전통과 정통이라고 자부하는 기독교인들이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 껍데기만 유대인이라는 것이요, 실상은 사탄의 회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핍박이나 환란이 전혀 없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목사들이 일방적인 설교를 얻어먹는 젖먹이 신앙생활하는 기독교인들이 사탄의 회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의 길을 가는 자에게 훼방하며 이단이라 핍박을 하는 것도  예수께서는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이 말씀은 진리의 신앙의 길을 가는 자는 고통과 환란을 받고 있으나 실상은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진리의 신앙의 길을 가는 자가 핍박이 없다면 모두 동일한 사단의 회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좁고 협잡한 길을 가는 자 특히 고통과 환란의 연단을 받는 자에게는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현제의 고난은 장차 하늘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고통과 환란이 없이 아무런 반응이 없이 평안하고 안일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당장에 애통하고 통곡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가볍게 넘기지 마십시오 그리고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진리의 길을 가는 자는 장차 고난을 받을 것인데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한 마음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마귀가 너희를 시험하려고 “10일”동안 고난과 환란을 주게 될 텐데 너희는 담대하게 이 시험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이 고통은 “10일”동안이라 하는데 “10일”이란 뜻은 날의 “10일”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장성한 자로 성장해서 시험을 이기고 면류관을 받는 기간까지가 “10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받는 자에게는 누구나 다 주는 시험인데 예수님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것과 같이 진리의 길을 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사단 마귀를 도구로 사용하여 시험을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전에는 마귀로부터 고통과 환란을 받으므로 그 어려운 시험을 광야에서 사탄 마귀에게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이때부터 인정하셨습니다. 욥기서를 보면 욥도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들어 사용하므로 욥에게 인간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강한 훈련을 시켜  그 어려운 고통과 환란을 이기므로 승리한 과정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강한 징계와 연단을 주시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이 험난한 시험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시험이 없다면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리의 길을 가는 자라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하며 지혜 있는 자는 빨리 깨닫고 거짓된 기독교를 벗어나 진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필자의 글을 영접하신 몇 분 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하여 면류관을 받기까지는 항상 시험과 환란은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환란의 기간이 “10일”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6일 천지 창조는 (선)과 어둠(악)의 싸움이며 빛이 어둠을 점진적으로 이겨나가 이 땅의 어둠의 존재를 하늘의 형상으로 만드는 것이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지혜가 있는 교인이라면 이러한 시험의 기간을 빨리 알아차리고 회개하고 진리를 찾아 죽도록 하나님의 사역에 충성해야 시험의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평생을 거짓된 기독교 안에서 목사들이 주는 젖먹이 신앙에서 고통과 환란 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 애급”(탈출)시켜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징계와 연단)으로 훈련을 시켰지만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멸망받은 것은 그 고통과 환란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고통과 환란을 겪어야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불가마 속에서 불로 연단한 정금같이 되어야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면류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 같이 안일한 신앙에서 적당히 해서 얻어지는 면류관이 아니라, 본문 말씀같이 최선을 다해 죽을힘을 다해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리의 길을 가는 자에게는 배후에서 사탄을 들어 조종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의 결론적으로는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것을 죽도록 죽기까지 견디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나를 불속으로 던져야 그 불속에서 연단을 받아 정금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를 당해서 고통을 당해본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화”“복”이고 “복”“화”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길을 가는 자가 “화”가 없다면 결코 “영생의 복”(시133:3)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