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 1

진리로 띠 띠우고 다니는 베드로,

제라늄A 2022. 4. 21. 17:56

요 21:18-2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 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 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 오니이까 묻던 자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쭈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 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젊어서는 네 스스로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네가 원하는 곳으로 “띠 띠고” 다녔지만 늙어서는 즉 장성해서는 하나님께서 너를 말씀으로 무장시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띠를 띠고 다닌 다”란 뜻을 무엇을 “비유”하시는 것일까?

엡 6:14-17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렇게 성경은 “비유 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 “문자 성경”을 읽으면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 같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영적으로 어렸을 때는 네 마음대로 살았지만 네가 늙어서는 즉 장성한 자로 거듭나서는 하나님께서 너를 말씀으로 무장시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장성한 자들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복음”을 전파해야 자신이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딤후 4:2 너는 복음(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 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부득불이란 할 수 없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한 자는 복음을 전파할 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기의 말씀은 구원을 받으려는 자에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필수조건으로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내 “살”과 “피”를 내주어 “내 몸 같이 만들어야” 나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사랑으로 구원하여 네 몸과 같이 만들라”는 이 한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율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만드는 것”이 곧 성경에 기록된 모든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거듭난 자들이 이웃을 구원하여 자신의 몸과 같이 만들어야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갈 5: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 사랑(구원)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 말씀은 인간의 윤리도덕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란 두 글자는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하는 “아가페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윤리도덕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롬 13:8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은 반드시 이웃을 구원해야 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먼저 거듭나서 예수님이나 사도들같이 이웃을 반드시 구원해야 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 있어야 “구원” 할 수 있는 것인데 기독교 안에는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이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은 “생명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거듭나야  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거듭나면 반쪽 “구원”을 받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만들어야 완전히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딤전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마 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말씀은  첫째 계명은  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하고  둘째 계명 네 이웃을 구원해야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랑”은 언제나 조건적이고 부분적인 대가를 바라는 사랑이며 이 “사랑”은 필요와 상태에 따라 언제든 변화하는 것이 인간의 윤리도덕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아가페 사랑”인 것이니  이 “사랑”이 아니고는 절대 죽은 자들이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베드로의 어떤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예언대로 서기 60년경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할 때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돌아가셨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죽게 된 것은 베드로 자신은 예수님과 동일하게 죽을 수 없으니 나는 거꾸로 매달아 달라는 베드로의 요구에 의해 집행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이르시되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는 만찬 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계속 나오는데 “성경”에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 그가 누구 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예수님에게 사랑받던 제자는 “요한”이라는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쭈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 찌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올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제자를 죽지 않고 머물게 하시겠다는 것은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기 위함이라 사료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