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온전한 십일조”생활을 잘하시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당연한 말씀으로 이해를 하십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이 본 문장의 말씀을 근거하여 당연히 소득의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들은 교회의 재정이 부실할 때는 주로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의 창고에다 저축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하나님께서 “비유”로 깊이 감추어진 “비밀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깨달으셔야 합니다. 이런 “비밀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허공을 치는 “우상”의 재물만 드리는 것입니다.
혹시 성경을 깊이 연구하시는 목회자가 이 말씀을 깨달았다 해도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선뜻 해석하기를 주저하는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십일조”가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목회자로서 발설하기가 곤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온전한 십일조”는 “돈”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는 당연히 “십일조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보겠으나 이 말씀의 영적 의미는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된 거듭난 너희 몸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본 문장에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된 너희 몸에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의 말씀”이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다. 는 말씀 같이 하나님의 성전인 너희 몸을 “창고”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 몸 안에 “양식”(말씀)이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의 양식을 반드시 자신의(몸) 성전 안에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수1:11)
그러므로 신앙인이라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네가 말씀으로 성장해서 장성한 자가 될 때까지 네 몸 안에 하나님의 양식인 말씀이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가나의 혼인잔치에 여섯 항아리(몸)에 물을 아구까지 채워 물이 포도주로 변해서 포도주를 연회장에 베푸는 거와 똑같은 말씀입니다. 이것도 몸을 “항아리”로 “비유”한 것입니다. “항아리”에 “물”(말씀)을 가득 채우라는 것은 신앙인의 몸을 항아리로 “비유”함으로 장성한 자로 거듭날 때 까지는 진리의 말씀을 신앙인의 몸 안에 가득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그 말씀을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으로 성장해서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성장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온전한 십일조”이며 창세기의 “육일 천지창조”와 똑같은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창세기 “육일 천지창조”를 만물 창조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온전한 십일조”의 근원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지창조는 자연계를 “비유”해서 어둠의 존재인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여 장성한 자 몸 안에서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안식”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제 칠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는 반드시 이웃에 상한 심령들을 위해 자신의 몸에 저축한 “생명의 말씀”으로 먹여 양육 시키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4:28-29 매 삼년 끝에 그해 소산에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성전)에 저축하여 너희 중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 고아, 과부, 나그네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리라, 이 말씀은 장성한 자 몸 안에 저축된 “생명의 말씀”을 세상에서 “출애굽”해서 방황하는 “레위인, 고아, 과부, 나그네들”에게 “영의 양식”을 먹이는데 배부르게 먹이라는 것입니다. 배부르게 먹이라는 뜻은 즉 충분히 먹여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양육시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장성한 자가 해야 할 “온전한 십일조”이며 가나의 혼인잔치의 포도주를 연회장에 베푸는 말씀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4:14-16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라 네가 네 자신 과 가르침을 삼가 이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 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렇게 할 때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수 없도록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범사에 복을 주신다는 것은 세상의 복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시133:3) 반드시 이웃을 복음으로 구원 시키는 것이 너희에게 “영생의 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원리이며 성경전체의 요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해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하며 장성한 자는 내가 구원을 받고 영생하기 위해서 이웃에게 복음(포도주)을 주어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 영생하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나 시험해보라고 해서 이 복을 받기 위해 땅의 소산인 소득의 십일조 재물만 열심히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소산이나 수입의 일부를 헌금으로 드리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변화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난 자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나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변화된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위해 소득의 “십일조”만 부지런히 드리는데 이것은 땅의 소산으로 드린 “가인”의 재물과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소산인 “박하와 회향과 근체”(마23:23)는 받을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14:20~21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들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적들과 싸워 그 얻은 탈취물 중에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으나 멜기세덱 왕은 영적인 사람은 받으셨으나 세상의 물품들은 도로 아브람에게 돌려준 것입니다. 이 문장에 멜기세덱왕은 히브리서 7장에는 하나님으로 상징되어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땅”에 것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가인”이 드린 땅의 재물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아직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외식과 형식으로 재물을 드리는데 너희가 무수한 재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재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사1:11~12) 호세아 6:3~6 하나님은 제사와 번제를 원하지 않으시고(예배와 헌금)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를 더 원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알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무수한 재물과 예배를 드린다 해도 그 예배는 하나님은 받으실 수 가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바치는 재물과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지 말고 “성경”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말씀”을 온전히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각종 수많은 종류의 헌금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교회 강대상에 올려놓고 축복기도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린 헌금 위에 목사는 손을 올려놓고 하나님께 재물을 드렸으니 백배, 천배 만배의 축복을 달라고 소리 높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재물을 누가 요구하였느냐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재물은 헛된 것이고 가증스러운 것이며 교회 마당만 밟고 왔다 갔다 하는 자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사1:11~12) 이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이라면 이 말씀을 깨달으신 분은 지금부터라도 “말씀”으로 성장해서 변화된 “자신의 몸”을 아벨의 제사와 같이 “진정과 신령”으로 율법보다 더 중한 “의와 인과 신”(마23:23)으로 “변화된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 마태복음 10:5~10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아, 과부, 나그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 마태복음 23:23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하늘의 소산, 영적인 십일조)을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 요한복음 2:14-16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라,
※ 계시록 17:17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말씀)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거짓복음)을 위하여 은(헌금)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열심)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생명의 말씀)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와서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언약한 확실한 은혜니라,
※ 잠언 23:23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 찌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