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너를 부인하고 네“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제라늄A 2022. 8. 19. 17:30

마 16:24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상기의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오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은 지금도 그 철 옹성 같은 기독교라는 집단에서 나오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계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 하는 이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는 사후에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될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하나님이 누구에게 재앙을 경고하셨는가?  불신자들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인 기독교인들을 말합니다. 오늘날 내 백성이 누구입니까? 기독교인들이 아닙니까? 이런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나처럼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고 상기의 본 문장의 말씀같이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반드시 지고 따라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처럼 반드시 십자가에서 자신의 존재가 죽어야 산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기독교 신학자들이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신학자나 목사들이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기 십자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오늘날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피”가 무엇인지 “십자가”는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간단히 믿어버렸으므로 가장 현명한 척했으나, “자기 십자가”에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구원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되고 나면 그때 주님이 구름 타고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구름”이 무엇인가 “물”(말씀)이 증발한 것이 “구름”이 아닌가, 그러므로 “구름”이란 부활된 말씀으로 성령께서 성전 된 내 몸 안에 “재림”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라는 말은 지구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어둠의 땅의 존재가 거듭나는 때가 “땅 끝”이라고 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깨닫게 되면 성전 된 내 몸 안에 성령께서 내 몸안에 “안식”하신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을 크게 오해하여 큰 교회마다 해외로 “복음”을 전파하라는 뜻으로 오해를 하여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웃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기 십자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께서 네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는지를 아는 자들이 없는 것인가? “성경”은 모두 예언이고 십자가도 모두 예언이고 “비유비사”인데 그 예언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도 전혀 모르니 자기 “십자가”를 어떻게 지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십자가로 잘 믿는답시고 이천 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십자가의 죽음”이란 “형이상학”의 말씀을 인간의 육적으로 죽는 “형이하학”의 죽음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 예언이며 예언은 “형이하학”의 기록인데 하나님의 본질은 “형이상학”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형이하학”의 기록이므로 성경을 “비유 비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비유 비사”를 풀어 인류 구원의 예수님의 십자가도 나의 십자가도 모두 “형이상학”의 십자가로 전환해서 보아야만 하는 시각이 필요한데  기독교인들은 전혀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성경”은 육적 죽음으로 기록을 했으나 그 본질은 영적 죽음과 영적부활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말씀은 잘 몰라도 하나님과 예수님만 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소아병적인 젖먹이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정말 답답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하는 나의 영적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도대체 신학박사님이 어디 있고 목사와 평신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목사 평신도 모두 다 일반이지 않는가?  하나님 및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영적 십자가”를 요구하셨습니다.“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복음을 잘못 받은 “육체 성전”을 헐어야 하는 옛사람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요 2:19-20 예수께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비유”로 너희들의 잘못된 말씀으로 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고(죽고) 예수님께서 전하는 “새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2000년 전 유대인의 예수를 믿어 자신 안에 잘못 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고(죽고) 오늘날의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과거의 양식이 무엇이었는가? 성경 신구약은 모두 말씀의 양식이 문자 그대로의 “형이하학”의 양식이고 그런 믿음의 기록입니다. 그런 “형이하학”의 육적 믿음에서 죽으라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죽기는커녕 이 같은 육적 과거의 문자 그대로의 믿음에서 줄기차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양식을 버리고 과거의 믿음에서 죽고(헐고) 오늘의 “새 양식”을 먹고 오늘의 “새 믿음”에서 다시 살아야(부활)합니다.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복음을 받은 내 것에서 죽지(헐지)않으면 새로운 내가 다시 살 수(부활)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 받은 복음이 진리인양 과거의 믿음에서 시퍼렇게 살아 큰소리치고 있는데, 즉 자기 십자가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실존 예수”로 오셨지만  그들에게 오늘의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이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진리의 새 말씀을 가지고 오셨지만  유대인들과 똑 같이 오늘날의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오죽 답답하셨으면   마 8:20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한탄하셨습니다. 도저히 유대교 때나 오늘날이나 기독교인들이 배척하기 때문에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하셨습니다.“예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 들어갈 곳이 없다고 오늘도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이같이 말씀을 모르고 하나님만 잘 믿으면 된다는 말은 허공을 치는 우상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죽어야 하는 “영적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도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도대체 거짓 목사 밑에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영적 십자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육체는 살아 있는 나의 옛 신앙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받은 거짓 복음 거짓 예수를 잘못 믿고 지어진 거짓된 46년 된 성전을 헐어버리고, 오늘날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도 자신도 동일하게 지고 따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상기의 기록된 말씀들은 모두 비켜가며 우리가 지고 갈 “십자가”는 예수님이 모두 대신지고 갔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기독교 교리대로 믿는 것은 자유이나,“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은 좁고 협잡하여 그 길로 가는 자가 적다고 하시며 많은 사람들이 넓고 평탄한 길로 가는데 그 길은 “죽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마7:13-14) 이스라엘 민족 60만이 출애굽 해서 가나안에 들어간 자가 겨우 2명과 새로 난자들만 구원받은 것을 꼭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의 길”을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