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벌거벗은 자는 바깥 어두움에 던져진다.

제라늄A 2022. 8. 20. 19:01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 시기 때문에 “말씀”을 모르면 성경에서는 “벌거벗은 자”라고 하는데 벌거벗었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벌거벗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성경에 “안팎”(계5:1)으로 기록된 “비유”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아니면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마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 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막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오늘날 “실존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벌거벗은 자”로 “구원”을 얻지 못하므로 반드시 오늘날도 “비유”의 “말씀”을 깨달아야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두가 하나님께서 깊이 “비유”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입니다.  계 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 하였더라,  “일곱인”으로 봉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성되어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예수”가 되기 전에는 성경을 아무도 풀지 못했다는 뜻에서 “일곱인”으로 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안팎”으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은 모르고 밖으로 기록한 껍데기 “성경 문자”를 그대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같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안팎”으로 기록된 성경을 깨닫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밖으로 기록된 “문자”성경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벌거벗은 몸”일뿐입니다. 그러므로 “벌거벗은 자”는 천국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마 22:11-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말씀)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 이어 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정신이 번쩍 들고 소름이 끼쳐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잘 몰라도 하나님은 열심히 잘 믿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수많은 하객 중에 “말씀의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발견하고, 마치 알곡 중에서 뉘를 골라내듯이 그 한 사람을 밖에 내쳐서 불타는 지옥 불에 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네가 어찌하여 “예복”(말씀)을 입지 아니하였는가?라고 임금이 질문을 했음에도 할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임금의 질문에 어찌해서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천국을 가기 위해 하나님을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의 “말씀의 예복”을 입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한 사람이 임금의 질문 앞에 입을 열지 못했던 것은, 그 역시 하나님과 예수를 열심히 믿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없어 “예복”(말씀)을 입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임금의 잔치는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지, 그 사실을 실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장차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의 예복”을 반드시 입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내용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주시해야 할 문장은 바로 상기의 본 문장의 “예복”(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 “예복”을 입지 않으면 천국에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임금님은 “예복”을 대단히 관심을 가지시고 계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예복”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시기 때문에 이 “말씀”(예복)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요 17:3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 곧 “예복”을 입지 않은 것입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하나님(말씀)을 알라 힘써 알라,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사 61:10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잠언 11:9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지식”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은 생소할 것입니다.  계 19:13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흰옷”이란 예수님이 소유하신 깨끗한 “진리의 말씀”이요 거듭난 자들이 입고 있는 “세마포 옷”이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계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말씀을 모두 “비유”로 깊이 감춰진 보화의 책이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성경을 많이 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예복”을 입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옷”을 입는 길이 분명히 열려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무조건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잘 몰라도 하나님을 열심히 잘 믿는 것은 곧 “우상”을 믿는 것입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흰옷”을 입는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사람이 “흰옷”을 입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 61:10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구원의 옷”이란 “생명의 말씀”을 말하며 “생명의 말씀”이란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흰옷”을 입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흰옷”이라는 것은 때 묻지 않은 하나님의 “깨끗한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사람을 “흰옷”입은 사람이라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옷”을 입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