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인간의 무지(無知)와 죄(罪) (2번)

제라늄A 2022. 9. 3. 16:34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상기의 말씀에  세상에 빛이 왔다는 것은 “참 빛”이신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이며,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 하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뜻” 에 따라 “구원과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삯꾼 목자들을 따라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해서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보다 “육신의 생명” 곧 자신의 존재를 더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육신은 영혼을 담고 있는 질그릇에 불과하며 잠간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자신의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무엇 때문에 만드셨으며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부귀영화나 명예 그리고 자기 가족이나 자기 건강을 위해서는 혼신을 다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이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의 존재도 모르는 자들을 무지한 인간 곧 “죄인”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의미 곧 내가 온 곳은 어디며 죽어서 가는 곳은 어느 곳인지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태어나서 왜 살고 있는지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나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없이 살다가 허무하게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인생은 무상하다, 일장춘몽이다, 잠깐 보이다 살아지는 안개와 같이 허무하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진정 일장춘몽이나 잠시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이 무상하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인생은 무상한 것도 아니고 유상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사람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무상할 수도 있고 무상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고 “창조주”(하나님)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내생을 준비하며 살아간 사람은 인생이 보람 있고 가치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물론 자신의 존재나 인생의 의미도 모르고 “자신의 욕심”에 따라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인생은 무상하고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태초에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인간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서 만든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때문에 피조물인 인간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지한 인간들은 하나님은 물론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세상을 무의미하게 자기 멋대로 살다가 이 세상을 허무하게 떠나가는 것입니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상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흙”을 빚어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단어 “생령”은  원문에 영(루아흐)이 아니라 혼(네폐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초의 인간은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혼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땅에 속한 “혼적인 인간”을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6일(여섯 과정)동안 재창조하여 하늘에 속한 “영적 존재” 곧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흙으로 만들어진 혼적인 인간들은 이 세상 사는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창조”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데 흙으로 만든 혼적인 존재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상기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 만든 혼적인 “피조물”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 사는동안 하나님의 “영”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흙”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존재 곧 “육신의 존재”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도서를 통해 땅에 속한 흙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다시 땅으로 내려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서 3:19-21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음으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상기의 말씀에 인생의 “혼”이라고 기록된 말씀은 원문에 “영”이라  기록되어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인간의 “영”(하나님의 생명)은 하늘로 올라가지만 아직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혼”은 짐승의 혼과 같이 다시 땅으로 내려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흙으로 창조된 “혼적 존재”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얼굴에 땀을 흘리는 수고와 노력으로 “하늘의 양식” 곧 하나님의 아들 이주는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얼굴에 땀을 흘리는 수고와 해산의 고통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이 세상사는 동안 얼굴에 땀을 흘리는 수고와 노력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날마다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다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 거짓 아들(양아들)들은 죽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인간들은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피조물”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물론 타 종교인이나 불신자들도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또한 이 세상의 천지와 만물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들의 생사와 화복은 물론 이 세상 삼라만상까지도 모두 주관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들이나 자연 만물들이 존재하는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인간은 물론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생물 체들이 단 몇 시간도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이 죽고 사는 것 그리고 인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고 “화”를 당해 고통을 받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들은 이 세상을 자기 뜻이나 자기 욕심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들을 만드신 “창조주” 이시며 인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자신의 존재를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산다면 사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 (사람이)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상기에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운명을 정해놓으셨기 때문이며 사람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을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사후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사후에 신앙이나 삶의 결과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모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이 세상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자는 상급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이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산 사람은 사후에 천국으로 들어가거나 내생에 좋은 환경에 태어나 행복하게 잘 살게 되지만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자나 자기 욕심대로 이 세상을 산 사람은 지옥으로 들어가거나 내생에 지옥 같이 열악한 환경에 태어나거나 지체부자유자나 혹은 저능아로 태어나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고 “인과응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무엇을 심던지 그대로 거두게 해 주신다는 인과응보 곧 하나님의 “공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이 타고 나는 운명이나 사주팔자는 하나님이 임의로 정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행한 것에 따라 행한 대로 공정하게 정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내생에 자신이 타고 나는 운명이나 사주팔자는 현생에서 자신이 행한 것들을 근거로 하여 태어나는 것이며 현생에 타고난 자신의 운명이나 사주팔자는 전생에 자신이 행한 것에 의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나 사주팔자는 하나님에 의해서나 혹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한 그대로 만들어져 자신이 받는 것입니다. 즉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지 콩 심은데서 팥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현생에서 자신의 “육신”을 위해 심는 자는 내생에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 곧 “생명의 말씀”을 심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불신자나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뜻에따라 성령 곧 오늘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실존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심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면 생로병사의 윤회가 계속되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지금까지 전생이나 윤회를 부정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을 통해서 전생과 윤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전생과 윤회가 사라지게 된 것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대제 때문입니다. 콘스탄티우스 대제는 전생과 윤회가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황제의 권위가 약화된다는 이유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전생과 윤회를 모두 삭제해 버리라고 명하고 그 때부터 전생과 윤회를 말하는 자들은 모두 이단으로 처형한 것입니다. 때문에 그 때부터 기독교에서 전생이나 윤회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생과 윤회를 “성경”의 구절들을 조금 남겨 두셨습니다.  전도서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도서 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상기의 말씀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생과 현생과 내생을 오고 가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땅”이 “하늘”로 거듭나지 못하고 계속 “땅”으로 있다고 한탄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땅”에 속한 “육신의 존재”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데 계속 “땅”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뜻은 “땅”이 하늘로 거듭난 존재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 11:13-15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 찐대 오리라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 찌어다.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만일 너희가 내가 하는 말을 즐겨 받는 다면 다시 오리라고 “예언”한 “엘리야”가 바로 “요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즉 말라기서 4장 5절을 통해서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다시 보내주신다고 “예언”한 “엘리야”가 ~ “요한의 몸”으로 윤회되어 다시 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말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인 뜻”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이 인간의 무지가 “죄”라는 것은 곧 하나님과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신 “영적인 뜻”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 “죄”를 범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인간의 무지”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기록자가 “인간의 무지와 죄”를 기록한 것은 여기에 기록된 말씀들을 오늘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영접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