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신앙인의“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제라늄A 2022. 9. 7. 16:58

기독교인들의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날마다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단어의 뜻을  원어에서 찾아보면 구하다, 간구하다, 빌다 등의 의미로 번역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 마음의 대화를 통하여“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기도는 마음과 마음의 대화 혹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며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진실이지만 생각은 대부분이 외식과 욕심으로 포장된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기도”는 하나님과 마음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며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것입니다. 또한“기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혹은 그 마음의 표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기도”는 굳이 자신의 마음을 소리쳐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해도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곧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기도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며 생각으로 하는 것은 진정한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기의 생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기도는 정욕에서 나오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본래의 마음은 진실이며 후천적으로 머리에 입력된 생각들은 세상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지식과 경험으로 형성된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으로 하는 기도는 대부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하나의 수단이요 방법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자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욕심이나 생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와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이나 진리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복 즉,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기 생각과 욕심으로 중언부언하고 있는 잘못된 기도를 지적하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인데 그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중언부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골방(마6:6)은  작은 다락방이나 어느 쪽방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너희는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세상 생각을 버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은밀한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큰소리로 기도하기를 즐겨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대중 앞에서 하는 기도를 외식적인 기도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기도를 할 때 모두 자기의 생각과 수단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외식하는 자들이 자기“생각”으로 하는 기도는 모두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하는 기도입니다. 즉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의 기도”를 통한 “영적인 교제”를 원하시며 하나님께 구할 것은 그의“나라”와 그의“의”인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땅의 썩어질 것들을 얻으려고 날마다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하고 찾으라는 그의 나라와 그의 는 바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말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오늘날 “실존 예수님”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과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수 없이 많은 기도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과연 무엇 때문에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 어느 누구나 기도는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와 받지 않으시는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하고 있는 잘못된 기도를 지적하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너희”라는 말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라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에서 문제가 되는 문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문구는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의 죄를 사해 주었으니 우리의 죄도 사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누구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이 “주기도문”의 뜻을 분명히 알고 해야지  모르고 한다면 하나님께 “죄”를 매주일 예배 때마다 범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죄지은 자들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인 제자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죄”라는 단어의 뜻은  원문에 “채무자, 빚진 자”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씀에 “사하다”라는 뜻은 “탕감해 주다, 용서하다”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본문을  원문으로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의 빚도 우리에게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뜻과 너무나 차이가 많아 이해하기도 어렵고 이해시키기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기도는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양식”을 먹고 살아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즉, 말씀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결국 하늘로부터 거듭나는 것은 하늘의 빚을 지게 된 것인데, 그 빚을 하늘에게 되돌려 갚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진 자로서 이제는 “어둠의 존재”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먹여서 그들의 “죄”를 사해 주는 것과 같이 나 자신이 하늘로부터 진 을 갚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기도문의 뜻을 모르며 만약에 주문 외우듯이 예배 때마다 외우 고만 있다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정말 통곡하며 회개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