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제라늄A 2022. 9. 24. 18:47

하나님은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어디 있을까 하여 찾고 계십니다. 왜? 무엇 때문일까?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수많은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기독교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하나님과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섬기며 주일마다 정성껏 준비한 헌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 하여 지금도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찾고 계신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교회와 그에 따른 교인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하나님이 원하시고 받으시는 “헌물”(제물)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제사)는 반드시 “제물”(헌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과 받지 않으시는 제물이 있습니다. 인간이 최초에 하나님께 드린 “제사와 제물”은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드린 것인데 이 제사(예배)가 예배의 근원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까지 들여오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모두 하나님께 “제물”(헌물)을 준비해 가지고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드린 제물(곡식)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이 하늘의 소산으로 드린 제물 곧 양과 기름으로 자신과 함께 드린 제물은 받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인 제물” 곧 “아벨”이 양과 기름(진리와 성령)으로 자신과 함께 드린 제물은 받으셨지만 “육적인 제물” 곧 “가인”이 땅의 소산(십일조와 헌물)으로 드린 제물은 받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가인과 같이 “육적인 헌물”(땅의 소산) 곧 소득의 십일조와 헌금을 정성껏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적인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받으실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도 아벨과 같이 “하늘의 소산”인 양과 기름 곧 진리와 성령으로 변화된 자신을 몸을 헌물로 드리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 하여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박하와 회양과 근채(육적제물)의 십일조는 잘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영적 제물)은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너희가 지금 드리고 있는 박하와 회양과 근채는 땅으로부터 나오는 “육적인 십일조”이며 “영적인 십일조”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의와 인과 신”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십일조”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도 복을 받기 위해 땅의 소산인 소득의 십일조는 열심히 드리지만 하나님이 원하시고 받으시는 영적인 십일조는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헌물)와 받지 않으시는 “예배”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4:19-24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은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는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   상기의 말씀은 수가 성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모두 이단으로 취급하며 상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인들은 본래 이방인이 아니라 모두 야곱의 한 자손이었는데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였다는 이유로 그때부터 이단 취급을 하며 상종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사마리아인들은 야곱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그리심 산에 성전을 건축해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중에 예수님이 선지자 곧 메시아인 것을 알고 그동안 궁금했던 “예배”에 대하여 질문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들은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사마리아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만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는 받으시고 자신들이 사마리아의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하며 또한 몹시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천주교인들이 성당에서 드리는 미사(예배)와 개신교회인들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어느 예배를 받으시는지 궁금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사마리아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모두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성전(교회)은 사람의 손으로 건축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건축된 성전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예수님과 제자들)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성전”(교회)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받으시는 “예배와 제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남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시키는 것은 건물 성전(교회)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인 “실존 예수님”이 구원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죽어가는 “영혼”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인데 구원은 사람이 건축한 건물 성전이 구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인 실존 예수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고 말씀하면서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 올바르게 예배드리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예배를 드리면서 신령과 진정이란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신령과 진정”은  원문 성경에 신령은 푸뉴마로 진정은 알레데이아로 기록되어 있는데 푸뉴마는 성령을 말하며 알레데이아는 진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령과 진리”는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 양(진리)과 기름(성령)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와 제물을 받으신 것은 양과 기름 곧 “진리와 성령”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받으신 것입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두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드린 “소득의 십일조”와 헌물(곡식)은 열심히 제물로 드리고 있지만 아벨이 양(진리)과 기름(성령)으로 변화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인 예배”(제물) 곧 진리와 성령으로 변화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자가 혹시 있는가 하여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바울도 로마서(12장 1-2절)를 통해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께서 너희는 이 세대에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소득의 십일조로 드리는 육적인 제사를 본받지 말고 “영적인 제사” 곧 “진리와 성령”(말씀)으로 새롭게 변화된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인 제물”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영혼”은 받으실 수 있지만 “육적인 제물” 곧 소득의 십일조와 헌물(헌금)로 드리는 제물은 받으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목사님들이 “땅의 소산”으로 드리는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창고가 넘치도록 복(돈)을 부어 주신다고 시험해보라는 말은 교인들에게 헌금을 좀 더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왜곡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목사님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땅에서 썩어 없어질 “육신의 복”으로 둔갑시켜 교인들을 미혹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아서 장사하는 자들 목사들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모두 내어 쫓으신 것입니다.  요 2:14-16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 돈을 치부하는 자들은 오늘날은 물론 유대교 당시나 그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팔고 사는 목사들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소, 양, 비둘기를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와 양과 비둘기는 실제의 짐승들이 아니라, 성경에서 “소”는 성부 하나님을 말하며 “양”은 성자 예수님을 말하며 “비둘기”는 성령 하나님비유”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화가 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는 자들을 모두 내어 쫓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먹는 자들은 오늘날 기독교에 계속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장사하는 목회자들을 “삯꾼 목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도 목사님과 동일한 욕심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며 목사님을 통해 축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잘살고 죽은 후에도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생각은 하지 않고 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욕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혹시 있는가 하여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제라도 잘못된 신앙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지금이라도 삯꾼 목자가 인도하는 넓고 평탄한 “멸망의 길”에서 하루속히 탈출해서 참 목자가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