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신끈 풀기도 감당치 못 하는 세례요한

제라늄A 2023. 5. 11. 18:44

요 1:20-27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 찐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상기의 말씀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유대인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제사장과 레위 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요한의 정체를 알아보려는 장면입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과 레위 인들이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을 때 요한은 자신을 밝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메시야, 즉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 그도 아니면 그 선지자냐 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며 나는 단지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곧게 평탄하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주의 길을 평탄케 하라고 외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요한의 외침이나 가르침을 듣지 않고는 절대로 가나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 볼 수가 없고 따라서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믿고 영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초등학생이 대학을 가려면 중, 고등학교를 거쳐야 대학을 가는 것과 같이 애급이라는 오늘날 세상기독교의 교인들이 가나안에 계신 예수를 만나려면 반드시 출애굽을 하여 광야의 모세를 통해 요단강으로 나아가야 하며 요단강에서 요한의 외침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야 비로소 가나안으로 들어가 실존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가나안에만 계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만나려면 오늘날의 세례요한과 같은 자가 이 광야에서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가나안에 계신 실존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이 보낸 자가 요한에게 네가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닌데 어떻게 세례를 주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세례요한은 나는 세례를 주지만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너희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 예수님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세례요한은 나는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세례를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나는 그의 신(끈) 들메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말과 같이 세례세례요한이 주는 물세례가 있고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세례라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 물 찍어 바르는 것이 세례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전 하는 것을 세례라고 하고, 성령세례생수와 같은 예수님이 직접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성령세례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물세례와 성령세례물과 생수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 그냥 기독교목사의 말씀을 말하며, 생수성령세례 예수님의 음성인 생명의 말씀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수 가성 우물가로 을 길러온 여인에게 이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말씀하신 이 곧 생수성령세례 생명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주는 말씀은 그냥 맹이며, 예수님이나 사도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이 주는 말씀은 생수 성령세례인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들메라는 단어는 원어에 신발 끈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신발 끈도 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즉 요한은 신발 끈을 풀지 못하지만 내 뒤에 오시는 예수신발의 끈을 능히 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발은 영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며 신발 끈을 푼다는 뜻은 무엇을 비유하여 말씀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세족식 을 씻기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소유한 생명의 말씀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신발복음의 신(엡 6:15) 즉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한 것이며  신발 끈을 푼다는 것은 아무도 풀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봉한 비유의 비밀의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풀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밭에 감추어놓은 보화와 같아서 예수님이 없으면 성경은 절대로 풀 수 없는 것은 물론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요한도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이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어 크게 울고 있을 때 다윗의 뿌리인 예수께서 풀어주신다고 했던 것입니다.

계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封)하였더라 안팎으로 기록된 책이란 내용이 안과 밖으로 기록되어 있는 책이라는 뜻이니 성경은 표면적인 성경이 있고 이면적인 성경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속에는 또 다른 성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안팎으로 기록된 책이 있으니 표면적인 성경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면적인 성경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표면적인 성경은 문자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말하지만  이면적인 성경이란 성경의 실체가 되는 예수님 안에 있는 천국의 비밀이 감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일곱 인으로 봉한 것이므로 일곱 날의 존재로 거듭난 자 외에는 아무도 열을 수 없도록 자물쇠로 채워났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어도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 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성경은 신구약 모두 형이상학의 말씀을 형이하학으로 기록한 것이므로 비유비사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문자로 읽고 이해하는 것은 곧 우상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 구약 모든 성경문자는 동일하게 비유비사이기 때문에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은 말씀은 오늘날 실존예수 이외에는 누구도 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