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을 소유 한다.

제라늄A 2023. 6. 15. 20:23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천국)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들을 보고 복 받은 사람들이요 행복한 사람들이라 하는데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복 받은 사람들이요 행복한 사람들이며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천국이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요, 마음이 가난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하셨고 성경에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하셨으며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갔고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다 하시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한 “가난이란 물질적인 “가난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유식한 자나 무식한 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선민이나 천민이나, 남자나 여자나, 재물이 많은 부유한 사람이나 재물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성경에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모두부자”들이라 하셨고  예수님과 같이 기독교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가난한 사람”들이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계의 “신학교리와 교권들을 버리고 기독교계의 모든 진리들을 버리며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을 버리고 기독교계가 가지고 있는 특권들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요 그들은 복이 있는 사람들이며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행복은 그 사람들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부자는 지옥에 갔고 나사로가 천국에 갔다는 것도 회칠한 무덤이요 강도들의 굴혈이 되어버린 오늘날 기독교계는 독사의 자식들이요 멸망의 자식들이니 그들은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천국이 되는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이 살고 있는 유대종교계를 버리고 이방 땅 갈릴리로 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증거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천국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더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더 가지려 하지 않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지식으로부터의 자유, 소유로부터의 자유한 사람을 말하며 나아가 진리로부터 자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어느 선에서 더 바라지 않아야 하고 더 알려고 하지 않아야 하며 더 가지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순간부터 더 바라지도 않고 더 알려고 하지 않으며 더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바라되 집착하지 않고, 더 알려고 공부를 해도 얽매이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가족을 위해 좀 더 가지려 일을 하더라도 남의 슬픔에 전혀 외면하지 않으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언제 마음이 가난하여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언제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답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자가 되어야 행복하다며 동분서주하고 부자가 되는 일에 목숨을 걸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갖 지혜들을 짜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기 위해 유대종교계를 떠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가셨습니다.

유대종교계의 모든 것들을 버렸고 그 진리들을 버렸으며 유대종교가 말하는 하나님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기독교계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이요,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 되면서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계가 가지고 있는 진리들을 버리고 기독교계의 교리와 교권들을 버리며 기독교계가 말하는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요, 그들만이 가난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이며 예수님의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면서 예수님의 행복을 누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버리고 떠났을 때 약속의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에덴동산과 같은 애급을 버리고 광야를 선택하였을 때 젖과 굴이 흐르는 땅에 들어갔던 것처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유대종교계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되었을 때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기독교도 버리고 진리들도 버리며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도 버린 사람들 “고아, 과부, 나그네”들이 될 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되어야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신다는 것이요, 천국과 행복은 그들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묻습니다. 나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더 물을 것도 없이 사람마다 행복의 대열에 끼고 싶지 불행의 대열에 끼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부자들은 화려한 성전들을 지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 큰 자리(직분)를 마련해 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갇힌 사람들이 되어 율법에 기록된 진리를 지키기 위해 날마다 종노릇 하고 있는 사람들이요, 안식일을 지키며 번제를 드려야 하고 진리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들을 지키기 위해 자유를 포기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종들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계의 실체요 부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기독교를 버렸고 이러한 하나님을 버렸으며 오히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새로운 진리의 세계를 보았고 새로운 하늘나라를 보았으며 천국이 되었고 행복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란 예수님처럼 기독교를 다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계를 다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성전과 예배와 설교들을 다 버려야 하고 기독교 “신학”과 교권들을 다 버리고 떠나는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자들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들로부터 자유 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자유 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천국이요,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야 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요 마땅히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부자요 무엇이 가난인지 알아야 하고 무엇이 행복이요 무엇이 불행인지 알아야 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요 행복도 불행도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부자들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행복은 아브라함이나 예수님처럼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버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금송아지 우상하나님”을 섬기는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가지고 부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천국과 행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가문도 그렇고 기독교계가 그러하며 세상사도 아비의 집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를 열 수가 없습니다. 당장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이 있는 부자들이 성공할 것 같고 행복할 것 같지만 그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요 그들은 천국이 될 수가 없고 그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속담에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였고 행복은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맞습니다. 밖에서 주어진 것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부자들이 가져다줄 것 같은 행복을 포기하고 그들이 모시고 있는“우상하나님을 버릴 때 새롭게 열리고 있는 천국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될 때 행복을 누리게 되어 있다는 것이며,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오늘날 기독교를 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입니다. 이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며 이들이 천국을 소유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