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 48절, 만약 두 사람이 한 집안에서 서로 화평하도록 만들고 그들이 산(山)에게 여기서 옮기라고 말한다면 산(山)이 옮길 것이다. 상기의 말씀은 한 집안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 화평으로 “한 몸”이 된다면 산(山)에게 명하여 이 산(山)에서 저 산(山)으로 옮기라고 명한다 해도 옮겨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집안”은 “한 진리”(생명)를 말하며 “두 사람”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오직 생명의 길을 따라가면서 예수님과 연합하면서 “한 몸”(마음)이 된다면 즉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된다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이 세상의 어둠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거듭나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산”(山)에서 저 “산”(山)으로 옮겨진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말씀)을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와 같이 “정결한 처녀”가 되어 신부단장하면 하늘의 예수신랑과 혼인함으로 “한 몸”을 이루어 인간이 신(神)이 되어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되기 때문에 거듭난 자들은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어둠”을 “빛”으로 이 산(山)에서 저 산(山)으로 옮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7: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山)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상기의 말씀은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으면 산(山)을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모두 “비유”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이므로 영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임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할 것은 겨자 “씨”가 무엇이고 또 “산”(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두 가지만 알면 쉽게 전체의 뜻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겨자 “씨”에 대해서 성경에서 무엇이라 하는가?
그 “씨”가 아무리 작은 “씨”라고 해도 “씨”속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싹이 나고 성장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완전한 생명과 유전인자가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눅 8: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실체이신 “말씀”이 곧 “씨”가 되는 것이며 이 말씀을 온전히 깨달은 자라야 “씨”가 싹을 내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어서 “산”(山)을 옮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산”(山)이란 무슨 “산”(山)을 말하는가, 이사야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이같이 “산”(山)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며 진리의 길을 가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 “산”(山)으로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옮긴다는 말은 “비 진리”의 거짓의 “산”에서 신앙생활 하던 자들이 자신의 신앙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는 진리의 “산”으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선다는 “말일”이란 뜻은 세상 마지막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 진리”를 소유한 자가 지은 자신의 육체의 성전을 헐어버리면(죽음) 이렇게 “종말”을 당해야 진리로 다시 지은 성전이 “산”(山) 꼭대기에 굳게 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겨자 “씨”와 같은 작은 믿음이 있으면 진리의 “산”(山)으로 옮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시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시는 기독교인들이 하루속히 진리의 “산”(山)으로 옮겨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산”(山)으로 가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에서 나온다고 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곧 “산”(山)을 옮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는 “비 진리신학”으로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이 없는 기갈의 시대가 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세상 교회에는 아무리 여기저기 다녀보아도 진리의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8:11-1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 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래서 상기의 본문말씀을 깨달은 자는 “비 진리”로 지은 거짓된 자신의 성전 된 몸을 헐고 진리의 성전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몰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 진리”에서 그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기독교인들의 “산”(山)이었던 철옹성 같은 기독교회에서 하나님의 전의 “산”(山)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길은 좁고 협잡한 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나왔다가는 다시 되돌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산”(山)을 옮길 때가 되면 마땅히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山)을 옮길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그냥 교훈으로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산”(山)을 실제로 옮겨야 하는 때가 올 것임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유대교 예수님 때에도 예수교 “산”(山)으로 옮긴 자들은 오직 예수님의 12제자들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교라는 “산”(山)에서 “실존예수님”의 “산”(山)으로 옮긴 것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영생의 말씀이 “실존예수님”에게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실존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전이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68-69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 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 매 우리가 뉘 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신줄 믿고 알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46년간 돌로 지은 예루살렘성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이 말씀도 예수님께서 “비유”로 유대인들의 잘못 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고 나 예수를 영접하여 진리의 성전을 다시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 예수님 때에도 12제자들이 율법의 철저했던 철옹성 같은 유대교의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을 다 버리고 영생의 말씀이 있는 예수님의 “산”(山)으로 옮겨 간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영생의 말씀이 나오는 오늘날에 세우시는 하나님의 “산”(山)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말씀의 길을 따라서 어려운 결단을 꼭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이 좌우되는 것이므로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 말씀이 세상의 어떤 보화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이며 오직 성경말씀을 온전히 깨닫는 것이야말로 육신의 우리의 생명이 영원히 사는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요 17:3 “참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아는 자가 영생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비 진리”로 잘못 지어진 육체의 성전을 하루속히 헐고 진리의 영생의 말씀을 소유하여 “산”(山)을 옮길만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