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올 자요 전능한자라 하시더라, 주 하나님께서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에도 오실 것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매, 이렇게 인간을 구원하시려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야만 인간을 구원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실존 예수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두 글자는 구원자란 뜻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는 누구나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예수가 있을 때만 즉 하나님이 실존으로 계실 때만이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12:24)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열매들은 한 알의 밀(예수)과 똑같은 성분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혼자이실 때는 한분이셨지만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예수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예수들”로 부활하신 후부터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롬 8:29 하나님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하여 미리 정하였으니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맏아들이 되시고 그의 제자들은 차남들인 형제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00년 전에 유대인에게 태어난 예수나 오늘날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예수나 미국에서 태어난 예수나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전에도 계셨다는 말씀은 우리의 전 세대에도 예수가 계셨다고 말하며 지금도 계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세대에도 예수가 계시고 장차에도 오신 다는 것은 우리 후세대에도 동일한 구원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어느 나라이든 그 나라의 구원자 예수가 한순간이라도 안 계신다면 절대로 구원은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의 몸을 입고 “실존예수”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에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그 나라에 “실존예수”로 계셔야만 그 나라의 백성들이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실존예수”가 오신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과 같은 목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실체이신 말씀께서 직접 “육신”(요1:14)을 입으시고 유대인의 “실존예수”로 오신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도 반드시 한국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실체이신 한국인 “실존예수”가 계셔야만 구원이 성립되는 것이지 사람인 기독교목사들이 신학교를 나와 구원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나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나 똑같은 말씀이라 해도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야만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실존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이 “실존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나 예수를 찾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 3:10-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2000년 전 유대교 때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유대인의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으며,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은 한국인의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유대인들과 똑 같이 이단으로 배척하고 또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실존예수”보다 제사장(목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고,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도 한국인의 “실존예수”보다 기독교목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오신 유대인의 “실존예수”에 대해서 성경을 통하여 그때 당시의 상황을 성경의 기록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태어난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42 너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잘 아는데 네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이렇게 유대인의 “실존예수”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한 형제들이나 한동네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요셉인 목수의 아들 예수를 구원자라고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같이 구원자 예수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실존예수”를 구원자로 영접하는 사람이 2000년 전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이나 영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불행한 것은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이 이단으로 배척해서 십자가에 죽인 그 유대인 예수는 잘도 영접하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한국인 “실존예수”는 유대인들과 똑같이 이단으로 배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모두 다 기독교인들이 목사들의 일방적인 설교를 듣기 때문에 성경의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이 한국인 “실존예수”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다시 오시는 “재림예수님”을 이천 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는데 그 예수가 언제 오시는지 어떤 나라로 오시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지 전혀 모르고 있으며 무조건 언젠 가는 오시겠지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믿고 있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예수님만 막연히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애급을 해서 광야에서 금송아지(하나님)를 만들어 놓고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 착각하고 섬기는 것과 똑같은 형상입니다.
그런데 “실존예수님”은 시대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의 얼굴과 모양은 다르지만 그 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은 똑같은 것이므로 “구원자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누구인지 확실하고도 분명히 알아야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지 이 예수를 잘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도 허공을 치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에게도 한국인 “실존예수님”은 이미 와 계신데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실존예수님”을 몰라 본 것 같이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도 오늘날 구원자 한국인 “실존예수”를 몰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오신 유대인예수님은 오직 한분이라는 고정관념이 의식화되었기 때문에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님”은 기독교인들 눈앞에 계신다 해도 유대인들과 똑 같이 영안이 없으면 볼 수가 없으며 알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셨을 때 만인이 보는 가운데 구름 타고 오셨다면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당연히 예수님을 다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초라한 가정집에서 유대인들과 같이 동거 동락하면서 30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같이 한 동네에서 살았는데 그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이런 말씀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왜 유대인들이 그 당시에 유대인 예수님을 영접을 안 했는지 그들의 입장에 서서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그날까지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믿고 결국은 멸망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에도 이미 실존으로 계신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를 기독교인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 뿐 성경에서는 분명히 현제에도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금도 기독교인들을 구원시키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예수가 아니라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한국인 “실존예수”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말씀을 이단들의 말로만 돌리지 말고 신중하게 좀 더 냉철하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내신 말씀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소홀히 대하게 될 것임을 뜻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필자 이찬일의 글을 영접하신 독자 분들 중에는 “실존예수”가 누구인지 벌써 감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름조차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부모 형제와 자녀들도 아무도 모르게 감추셨습니다. 계시록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말씀)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독자 분들 중에는 필자의 글을 읽고 깨달은 만큼만 시인을 하게 되는데, 반대로 필자의 글이 깨달아지지 않았거나 실체로 증거 되지 않으면 시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 요한 1서 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
* 계시록 1:7~8 볼찌어다 구름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 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 마태복음 13:11~13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아가페사랑)이라 *
* 요한 1서 4:8~9 ...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예수)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아가페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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