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준은 예수

호로고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제라늄A 2024. 3. 1. 06:00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의 첫 단어 태초는 헬라어 아르케와 창세기 1:1 첫 단어 태초는 히브리어 베레스트는 동일한 단어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태초는 시작의 뜻도 있지만 히브리어 원뜻은 근원꼭대기머리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원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초라는 단어의 뜻은 시작의 개념이 아니라 근원 되시는 성부하나님을 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해 계신 분으로 시작 안에 갇혀계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글성경이나 영어성경에 태초를 시작의 개념으로 in the bigining으로 번역하여 어느 기점이나 시작하는 때로 오역을 해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태초는 시작이 아니라 근원이신 성부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1이나 1:1의 태초의 말씀을 모르면 성경전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엘로힘)이라는 단어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기 때문에 하나님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는 말씀을 원문으로 다시 보면   창세기 1:1 성부하나님 안에 성자하나님들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가 정확한 번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자하나님(예수)들이 땅의 어둠의 존재를 하늘의 빛의 존재로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26 우리(예수들)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렇게 우리라는 복수형의 성자예수들이 천지창조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부하나님은 이시기 때문에 창조의 사역, 즉 구원과 심판을 직접 하지 않고 말씀육신을 입고(요1:14) 실존 예수님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은 1:1 말씀대로 의 어둠의 존재를 하늘의 빛의 존재로 창조하는 것이 천지창조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태초는 시작의 개념이 아니라 성부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으며 태초 안에 있는 말씀은 그냥 말씀이 아니라 호 로고스 곧 성부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되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번역자들이 성부하나님을 시작의 개념으로 태초로 번역을 해 놓았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지금도 창세기 1:1의 태초를 만물창조로시작의개념으로 in the bigining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신학은 물론 기독교목사들이 성경을 올바로 전하지 못하고 성경전체를 잘못 해석함으로 기독교 신학은 비 진리로 추락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신학이 엄청난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은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문자 성경 그대로 이 세상 만물창조로 해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성경전체를 비 진리로 추락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의 진정한 뜻은 시작의 개념이 아니라   요한복음 1:1 성부하나님 안에 말씀이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기록이 되어야 정확한 번역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실체이신 말씀육신을(요1:14)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실존예수님창세기 1:1의 하나님의 뜻에 따라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창조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며 따라서 땅에 속한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시는 것이 창세기의 천지창조(天地創造)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목회자들 입에서 나오는 로고스말씀이 아니라 가 붙은 호 로고스 하나님의 말씀이라야만 그 말씀으로 성전을 건축해야만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이 그 몸 안에서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반드시 가 들어가는 호 로고스가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이같이 인간이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는 첫째 조건이 먼저 호로고스의 말씀을 전하는 실존예수를 알아야 하는데 그냥 기독교목사들의 로고스의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호로고스 그 말씀을 영접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예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도마복음 108절 예수께서 누구든지 내 입으로부터 나오는(말씀)것을 마시는 자는 나와 같이 되며 나는 그 사람과 같이 될 것이다.  이같이 실존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호로고스 말씀을 직접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기준은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실존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직접 듣고 그 말씀을 영접하는 자들만이  예수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실존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이 구원이 성립되지 사람인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그냥 로고스 말씀은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그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로 비유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낳는 것이 씨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존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이외에 사람인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말씀이라도 로 낳음을 받지 않은 말씀은 하나님(호로고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알곡과 가라지를 비유한 것입니다. 겉에서 보면 둘이 똑같기 때문에 분별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 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오늘날 기독교인들께서는 깊이 묵상하시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시고 확실한 깨달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상기의 말씀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과 밖에서 일어나는 것을 비유로 기록된 말씀인데 필자는 밖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한 에 두 가지 가 뿌려졌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본 문장의 말씀에 예수님께서 천국은 좋은 를 제 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으므로 천국의 를 뿌린 사람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13:37)라고 말씀하심으로 좋은 를 뿌리신 이가 예수님이며 제 이라는 것도 곧 예수님의 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주인의 원수가 와서 알곡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에 알곡도 뿌려지고 가라지도 뿌려지게 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31:27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이렇게 사람의 씨 짐승의 씨가 오늘날 예수님의 인 기독교에도 뿌려진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의 씨는 바로 예수님께서 뿌리신 알곡이며  짐승의 씨는 원수가 뿌린 가라지입니다.  마태복음 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 꾼은 천사들이니,  즉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라고 하셨는데 마귀는   계시록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하심으로 원수가 곧 예수님과 하나님의 대적자인 마귀이며 용이요 옛 뱀이므로 짐승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에는 예수님이 뿌리신 좋은 가 자라게 되었고 그 밭에는 마귀의 도 덧 뿌려져서 함께 자라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여기서 은 너희 곧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여 있는 곳 즉 교회를 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은 세상이요,라고 하신 말씀이 저 불신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 뿌려진 곳은 기독교인들의 모여 있는 교회에 뿌려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인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 뿌려진 에서 곡식이 자라는 것이지 가 뿌려지지 않는 불신자의 에서는 곡식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는 추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예수님이 뿌린 “알곡의 씨와  원수 마귀가 뿌린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에 좋은 씨 알곡을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가라지를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이 말씀의 뜻은 신앙인들이 주의할 것은 오늘날 노아홍수 때와 같이 수많은 말씀들이 진리와 거짓의 말씀이 거의 똑같기 때문에 거듭난 자가 아니면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을 못하기 때문에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