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제라늄A 2024. 3. 2. 01:14

마태복음 10:22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에는 끝까지 견디고 견뎌라 라는 당부의 말씀이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 즉 끝까지, 또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며 왜 구원을 받게 되는가? 오늘날 실존예수를 영접한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이단으로 핍박을 받기 때문에 끝까지 참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따 먹은 선악과로 시작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엄히 명령하신 선악과를 인내하고 멀리하여 따 먹지 말고 순종했다면 그들은 이미 구원과 영생을 받았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실상으로 오신 예수님이고, 그의 아내 하와는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받아야 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예 표한 창조의 기본각본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인내하지 못하고 냉큼 따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와는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주어 먹게 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예표 된 아담은 그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만 했으나, 그의 아내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군말 없이 받아먹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까닭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실상으로 오신 실존예수님 때부터 오늘날 기독인들 모두는 지금까지 참지 못하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오늘날까지 따먹어 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선악과는 먹음직스럽고 보기에도 탐스럽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은 것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간다는 선과 악의 구별심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참뜻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은 비 진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팎으로 내면의 참뜻을 비유로 주신 말씀이 예수님의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마가복음 4:11-12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저희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말씀을 주실 때 그것이 비유가 아닌 것이 없다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유로 받지 아니하고 그대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서 그 즉시 성급하게 구원과 영생을 받았다고 믿었던 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니, 이것이 끝까지 참지 못하고 인내함이 없이 따먹은 선악과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비유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그것이 곧장 구원이라고 믿었으니 그야말로 보기 좋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서 따 먹게 되는 탐욕의 선악과였던 것입니다. 구원이란 반드시 참고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먼저 참고 인내하도록 하는 비유의 율법을 주시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은 나중에 구원의 내면적 말씀을 풀어주시도록 창세부터 마련되었고 그대로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먼저는 율법이요, 나중은 구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말씀을 비유로 주시는 율법이요,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은 그 비유의 말씀을 마침내 속속들이 풀어주시는 구원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 인들은 하나님의 비유의 말씀을 참지 못하고 오늘날의 이루어질 “비유로 받지 아니하고,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는 동안 문자 성경 그대로 받아서 그때부터 즉시 구원을 받아버렸다고 성급하게 믿었으니 그것이 곧 선악과를 따 먹어버린 죄과를 범한 것이 됩니다.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는 말씀을 깨닫지 못한 가운데 그 소경의 복음은 오늘날까지 전해졌고 예수님은 약속대로 오늘날에도 마침내 비유 속에 감추어진 구약의 말씀과 유대교 때의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풀어주시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실존예수님 때보다 오늘날 거짓된 기독교는 비유의 말씀을 전혀 풀지도 않고 풀어서 읽어 보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깜깜한 소경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기독교의 소경들에게 사로잡혀 있는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빛 밝은 진리의 새 말씀으로 하루속히 도망가야만 하는 전무후무 하게 절박한 마지막 때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도망가야 하는 때를 이렇게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 하라,  마가복음 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찌어다.  도망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저 곳으로, 즉 비 진리의 신앙에서 진리의 새 말씀으로 넘어가야 하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 때 기독교인들은 참고 인내하지 못하고, 기독교인들의 신앙심이 얼어붙어 냉담한 상태로 있다면 도망갈 일이 없으므로, 도망가는 일이 겨울이 되지 않도록 당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참지 못하고, 어느 한 곳에 기독교인들의 신앙심이 평안한 가운데 안주하고 있다면, 즉 짐승의 표를 받고 평안하다 안전하다를 외치며 그대로 한 자리에 굳게 정착하고 있다면 도망가야 할 일 즉 구원받을 일이 없으므로, 도망가는 일이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유대에 있는 자들이란 오늘날 기독인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의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비유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먹고 있는 소경 된 자의 기독교인들의 믿음입니다. 그러한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이 유대에 있는 자들인 오늘날 기독교인들 됩니다.

그들은 끝까지 참지 못하고 진리의 새 말씀이 들려오는 곳으로, 즉 오늘의 영적 시온 산으로 도망가야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계14:1~) 인내란 무엇인가? 기독교인들의 신앙양심이 굶주려서 죽을 지경에 빠져 있을지라도 기독교인들의 신앙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진리의 빛 밝은 말씀이 아니라면 결코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즉 참고 견뎌야 하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그 말씀이 거짓되다면 먹지 않고 참고 참아 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냉담한 자 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외쳐대는 비 진리의 말씀에 정착하지는 말아야 하니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다시 말해 기독교인들 앞에 차려놓은 영적 진수성찬임에도, 그래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싶어서 당장에 먹고 싶지만 그것을 참고 나 홀로 외롭게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향해 찾고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거짓된 기독교에서 출 애급(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거지 나사로 반열에 들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영적 거지, 나사로 반열을 결코 환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어디서든지, 거짓된 목사들이 어디서든지, 진리의 길을 찾아가는 출 애급(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거지 나사와 같은 그들을 이단으로 경멸하며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실존예수님은 지금까지 거느려 왔던 많은 양 떼를 버려두고 이같이 길 잃고 헤 메는 양 한 마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하시기 위해 오신다는 점을 밝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진리의 길을 따르는 자는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마24:13)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