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2:15~19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그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편저편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라, 여호수아가 백성의 떠듦을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니이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본문에 시내 산에 말씀을 받으러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아론을 선동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노래하며 춤추는 장면과 아론과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금송아지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 판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하나님인 금송아지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바알로 둔갑되었고 세상축복을 주시는 기복적인 하나님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안에 지금까지 이 금송아지 안에 교단과 교리에 의한 다른 예수를 믿었고 복음이 없었습니다. 목회자들은 황제의 자리에 올라 타락하였고 교인들은 이를 부추겨 문제해결을 위한 땅의 것만 구하여 금송아지 하나님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모세가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돌 판을 깨뜨리는데 사실은 우리 몸 자체가 우상이기에 금송아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나 다른 예수를 믿고 있기에 금송아지 하나님을 섬기는 그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즉 우리 육체인 죄의 몸, 사망의 몸, 옛 사람 때문에 돌 판을 던져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금송아지 하나님으로 믿고 예배드린다고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첫 것이 폐하여져야 하기에 첫 돌 판은 깨져야만 합니다. 이는 말씀이 육신으로 오실 예수요, 옛 사람, 죄의 몸, 육체를 위해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을 말함이요, 십자가 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첫 것은 종교인만 만들기에 첫 것은 깨져야만 종교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도 안의 생명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모세는 돌판 두 개를 받았는데 첫 것은 산 아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우상행위로 말미암아 깨트려짐을 당하고 둘째 것이 참 언약의 돌 판이되었습니다. 이것은 첫째 것은 폐해지는 율법임을 뜻하고, 두 번째는 진정한 언약의 말씀이 됨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전체의 흐름은 항상 둘째 것이 승리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교 때의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백성에서 오늘날의 예수님의 새 말씀으로 유월 받는 유월절에 즈음해 있는데,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오늘날 예수님이 주시는 새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말씀은 재림 주가 내게 오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초림주의 복음이 내 안에서 죽고, 새 사람으로 부활(거듭)될 때 재림주가 내 안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반적으로 첫째와 둘째 장자와 차자 이렇게 둘씩 등장하는데 항상 둘째 것이 승부수입니다. 하나님의 성전도 처음 성전과 둘째 지성소로 구분되었고 하나님은 지성소에 계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처음 성전을 통과하여 지성소까지 이를 때에 가능합니다. 처음 성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종의 자리이고, 두 번째 지성소만이 하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고전 15:45 “첫 사람 아담은 산영(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했을 때 첫 사람아담의 성소에서 거듭나 마지막 아담지성소라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 이삭, 야곱 이 밖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장자와 차자가 나오는데 모두가 둘째인 “차자”가 승리합니다, 이런 것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두 첫째아담인 육적인 존재에서 거듭나 “둘째아담으로 생명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확실히 증명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처음 사람”에서 “둘째 사람”으로 지어져야 하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둘째 사람”을 이루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허공을 칠 뿐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첫 사람이 십자가에 심판받고 부활하여 둘째 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다만 죽은 후에 주님 재림 때에 부활한다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옛 사람은 알파요, 처음이요, 거듭남은 오메가이며, 나중인 것입니다.
성경적인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성경대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주로 믿어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들입니다. “살과 떡은 하위개념의 복음이요, 피와 포도주는 상위개념인 오늘날의 생명의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것은 물은 떡과 살이요, 성령은 피와 포도주라는 것입니다. 계시록 19:13 그가 피 뿌린 옷(포도주)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 하더라, 이것을 주님이 성찬 때 다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 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출34:4)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 때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40일 40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첫 돌 판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지만 두 번째 돌 판은 모세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자기가 직접 지고 죽어야 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죄가 있는 육체의 몸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멸하시기 위해 불을 땅에 던지려 오셔서(눅12:49) 몸을 드리심으로 살려주는 영이 되신 것입니다. 모세가 언약의 말씀을 받을 때 40일이 걸린 이유가 무엇인가? 이도 율법, 육체가 죄의 몸이 사망의 몸, 옛 사람이 죽는 기간이 지나가야 구원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광야 40년, 40일 금식도, 고난을 통해 육체를 깨닫기 위한 기간이었습니다.
육체 안의 자아의 죄를 깨달아 해결치 못하면 마음이 완악할 수밖에 없고 믿음의 화합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성가운데 깨달아진 것을 마음에서 믿음으로 화합해야 온전한 믿음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도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해서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없음과 마음이 완악하다고 꾸짖음을 당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도 금송아지 신앙에 빠져서 부요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꿈꾸고 있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기사와 이적을 통한 행적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통해 보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에 대한 갈증이 있는 “고아, 과부, 나그네를”통해 십자가의 도를 보이시고 이방인의 구원이 어떻게 될 것을 그림자로 나타내셨습니다. 모세는 죽어서 시체가 감추어지고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을 합니다. 모세는 말씀이 육신으로 올 예수님의 완전한 그림자요, 첫 번째 돌 판인 율법을 나타냅니다. 엘리야는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실 그리스도를 예시하고, 두 번째 돌판 안에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스가랴는 이를 두 감람나무로 사도요한도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로 설명합니다(계11:2~6) 비가 오지 않게 한 선지자는 엘리야이고,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 선지자는 모세였습니다.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난 변화 산에서 나타난 사람도 역시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눅9:30) 모세의 첫 번째 돌 판에는 분노가 있었지만 두 번째 돌 판에는 얼굴에 광채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돌 판은 재림주의 생명의 광채요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입니다. 이 광채 때문에 얼굴을 가렸던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벗겨진다고 말씀합니다(고후3:13) 수건을 벗었다는 것은, 옛 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어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도 내 겉 사람을 해결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진리의 말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40일 동안 듣고 완악함을 해결했습니다. 우리도 육체를 멸하지 않으면 무조건 완악합니다. 영광의 광채시요,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믿음의 행함을 해야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믿어져 십자가로 가서 옛 사람을 처리해야 합니다. 둘째 것을 세우는 것에 순종해야 안식이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계명과 율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세의 율법이 왜 중요한가? (0) | 2025.05.08 |
---|---|
기독교에서 만들어 가르치는 의문들, (0) | 2023.09.17 |
예수님은 무슨 “양식”을 잡수실까? (0) | 2022.10.07 |
오늘날 영혼을 살인하는 자는 누구인가? (0) | 2022.04.29 |
※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복음”을 전파하라 ※ (0) | 2022.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