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큰 양 한마리가 더 중하다 ”
도마복음 107절,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는 백 마리의 양을 소유하고 있는 한 목자와 같다. 백 마리 양 가운데 가장“큰 양”이 길을 잃었다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놓아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큰 양“을 찾을 때 까지 찾아 다녔다 목자가 힘써 그 양을 찾은 후에 그 양에게 나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너를 더욱 사랑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100마리 양”을 소유하고 있는 한 목자와 같다고“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100마리 양”가운데 가장“큰 양”한 마리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는“99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큰 양”을 찾아다니다가 그“큰 양”을 찾은 것입니다. 목자는 그“큰 양”에게 나는“99마리의 양”보다 나는“큰 양”너를 더욱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날기독교인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한 사람의 생명보다 99명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마 18:12-13 만일 어떤 사람이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99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99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100마리 양”을 소유하고 있는 한 목자와 같다고“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상기의 도마복음 말씀에“100마리 양”가운데“큰 양”한 마리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는“99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한 마리 큰 양”을 찾아다니다가 그 길 잃은“큰 양”을 찾은 것입니다. 목자는 그“큰 양”에게 나는“99마리의 양”보다 나는“한 마리의 큰 양”인 너를 더욱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기독교인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한 사람의 생명보다“99명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99마리의 양”보다“한 마리의 큰 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독교를 탈출한자는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99마리의 양”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애급”이라는 세상에서 종교생활 하는 기독교인들을“비유”해서 젖 먹이“양“들이지만 길 잃은“한 마리의 큰 양”은 이미 성숙해진“큰 양”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잘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면“한 마리의 큰 양”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기독교 기복신앙과“비 진리”의“신학”이 거짓이라는 것을 자신이 깨닫고 기독교에서“탈출”한 진리의 길을 찾아 떠난 홀로된“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자들을“비유”로 길 잃은“한 마리 큰 양”이라고“비유”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거지나사로와 같이 길 잃은 영적인“고아, 과부, 나그네“가 되어 진리의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여기저기 걸식하며 이교회 저 교회로 다니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말씀)찌꺼기를 얻어먹는 거지”나사로“(눅16:21)와 같은 신앙 생활하는 자를 길 잃은 한 마리의“큰 양”으로“비유”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찾고 있는 길 잃은“한 마리의 큰 양”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준비 된 자(알곡)를 말하며“99마리의 양”은 아직 죄 가운데 머물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노릇하는 오늘날 젖 먹이 신앙생활 하는 오늘날기독교인들을“비유”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태산같이 쌓여있는 수많은 쭉정이 보다 한 알의 알곡을 더 소중히 여기 신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보시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부하는 오늘날 99마라의 양인기독교인들을 버려두시고 생명의 길을 찾아 기독교를“탈출”해서 방황하고 이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며 문전걸식하는 길 잃은“한 마리의 큰 양”같은 오늘날의“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이 홀로된 자를 오늘날의“실존예수님“은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잃어버린“한 마리 큰 양”이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지금 나는 예수님이 찾고 계신 길 잃은“한 마리의 큰 양”인지 아니면 예수님이 버려둔“99마리의양”가운데 있는 아직도 기독교목사에게 일방적인 설교의 젓이나 얻어먹고 편안하고 안일한 신앙생활 하는 기독교인 중에 한사람 인지 한번 이글을 보시면서 자신의 신앙을 깊이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이글을 읽으시고 이 말씀의 뜻을 깨닫는 분이시라면“비 진리”의 오늘날기독교 신앙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진리를 찾는 영적인“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이 본문장의 홀로된 길 잃은“한 마리 큰 양”같은 자들이 되어야 오늘날의“실존예수님“은 그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모두 영적으로 깊이 감춰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보아도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오셨지만 하나님을 철저하게 잘 믿는 수많은 유대인들 가운데”실존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겨우”12제자“들 이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이 오늘날기독교인들은 하늘의 별수와 같이 수많은 목회자들과 바닷가 모래알같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깊이 감춰진 비밀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아니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영적으로“큰 자”들이 된 부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절대로 천국에는 들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막 10: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 우니라, 이렇게 영적으로“큰 자”가 된 부자가 되어 있는 오늘날기독교인들보다”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더 쉽다고”비유“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다”비유“로 감춰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을 한사람도 낳은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날마다 죄를 범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씨“로 낳은 예수와 같은 자들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비 진리“라는 것을 깨닫고 기독교에서 벗어난 오늘날”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이 홀로된 길 잃은“큰 양”과 같이 된 자들이 진리를 갈급해 하는 자들이 결국은“참 진리“를 만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루속이“비유”로 기록된“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요17:3)
(원문출처: 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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