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할례는 모든 점에서 유익하니라 ”
도마복음 53절,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할례는 유익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시니라, 만약 그것이 유익하다면 그들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그들의 어미에서부터 이미 할례를 하여 만들었을 것이다 오히려 진정한 할례는 모든 점에서 유익하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할례“는 하는 것이 유익 하냐 안하는 것이 유익하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만일“할례“가 유익하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어미에서부터 이미“할례“가 되어 나오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할례“는 모든 점에서 유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육신적인“할례“는 무익 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할례“는 로마서2장을 통해서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롬 2:25-29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 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 할례 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 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 할례 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상기의 말씀에 할례는“표면적 할례”와“이면적 할례”가 있습니다. “표면적 할례”는 의식에 따라 이마에 물 찍어 바르는 세례식이며“이면적 할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하는 마음의“할례”입니다. 그런데“표면적 할례”나 혹은“이면적 할례”를 받았다 해도 율법을 지키지 않거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다면 모두 무“할례 자”와 같이 아무소용이 없으며 세례를 받지 않은 무“할례 자”라도 율법을 지키며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그가 곧“할례 자”라는 것입니다.
즉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과 같이“할례”를 받았다 해도 말씀대로 살지 않는 다면 아무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진정한“할례 자”인지 아니면 무“할례 자”인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할례”라는 것은 구약의 남자 아기를 낳으면“7일”을 지나서“8일째” 되는 날에는“할례”를 받아야 하는 율법이 있습니다. 또한“할례”라는 것은 육신의“씨“를 받고 태어 난”죄인“들이 받는 것인데”동정녀마리아“는 자신이 낳은 아기예수를“8일째”되는 날에(눅2:21)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할례”를 받게 한 것으로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예수는“동정녀마리아”몸에서 성령의 잉태로 태어난 분이라“죄“가 없는 분이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성경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기독교의”신학“과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인데“할례”란 남자 아기의 성기 껍질을 조금 베어내는 종교 의식인데, 지금도 유대인들은 엄격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종교 의식은 의식일 뿐 하나님을 아는 진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예수를 믿는 기독인들 역시 예수님의 명에 따라 물로 세례를 주는 종교의식을 엄격히 지키고 있는데, 유대인들이“할례”를 받는 일이나 기독인들이 물로 세례를 받는 일이나 매 한가지로 다만 종교의식일 뿐, 그것들이 하나님을 아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받는“할례”나 기독인들이 받는 물세례나 매 한가지로 하나님 앞에 죄 씻음을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의 종교의식의 율법입니다. 즉 구약의“할례”가 신약에서는 물세례로 변형되었을 뿐, 이도 저도 모두 율법입니다. 종교의식의 율법은 백날 천 날을 지켜도 구원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상전과 종의신분일 뿐,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율법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구약은 실상이 아니고 모형이며 신약의 예수님 때부터 모형이 실상으로 바뀝니다.
구약성경은 모든 선지자들이 오실 구원자“실존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며 신약성경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오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형은 예수님 때에 대한 예언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예수님은 구약의 모형에서 실상이 됩니다. 세례요한은 자기는 물세례를 주고 있으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성전은 지성소로서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동일한 하나님입니다. 다만 제자들을 통해 물세례를 주었고, 오늘날에는 직접 말씀의 성령세례를 주시는 분이므로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성막은 첫 성전과 지성소, 이렇게 둘인데 처음 성전은 예수님에 대한 성전이 되고 지성소는 죽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성전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처음 성전은 성전이로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입니다. 즉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해 종교의식일 뿐인 물세례를 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유대 당이“8일째”되는 날에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이“일곱 째날”을 지나서“8일째”되는 날에 창세부터 감 추인 것을 밝히 드러내어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 모르는 죄를 씻어 구원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일곱째 날”이라는 것은“6일 천지창조”가 완성된 자를 말 합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예수님이 떠나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시기를 마 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곱 때”를 지나서“8일째” 되는 날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구원으로 인도하실 때까지 사람들에게(물로)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이는 복음을“세상 끝날”까지 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 끝날”이라는 뜻은 천지개벽으로 세상이 끝나는“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6일 천지창조”가 완성되는“일곱 때”의 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어둠의 존재가 끝나고 빛의 존재가 되는 때를“세상 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8일째”받는“할례”란 예수님이“일곱 때”를 지나서“8일째”되는 날에 다시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로 인도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즉“8일째”되는 날에 받는“할례”속에는 예수님의 기록이 모두 압축되어 약속된 율법입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율법을 완성케 하러 오셨다는 말이 이에 성립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라고 하는 문자 자체에 갇혀서 종노릇 하지 말고 율법이라고 하는 문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 심오한 내용을 알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눈으로 읽지 말고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원문출처: 새사람 블로그)
'도마 복음 해설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마복음 51 절, 종말이 언재 오는지 예수님에게 묻는 제자들(재림 예수님은 누구에게?) (0) | 2018.07.10 |
---|---|
도마복음 52 절, 성경은 오늘날 실존예수님을 기록한 책이다. (0) | 2018.07.10 |
도마복음 54 절,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다. (0) | 2018.07.10 |
도마복음 55 절, 부모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0) | 2018.07.10 |
도마복음 56 절, 세상을 알게 된 자는 죽은 시체라는 것을 깨달은 자다. (0) | 2018.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