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해설

요한복음 해설 20 장 1-10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심

제라늄A 2018. 7. 13. 06:54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심 ” 

요 20:1-10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때 둘이 같이 달음질 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절,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10절,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해설: 9절 말씀에”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자가 누구인지를 알때에 예수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안식일”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에 달려간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어머니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많고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신데 어떻게“막달라 마리아“가 잠도 설치고 이른 새벽에 무덤으로 달려갔을까요?“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현장을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 마리아와 함께 지켜보고 있던 여인이며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가장 먼저 목격한 여인입니다. 그보다“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일 처음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한 여인이며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전한 여인입니다.

 

이렇게“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서 일거일동을 지켜보며 예수님을 보필하면서 사명을 감당하였는데 이 여인은 과연 예수님과 어떤 관계일 까요? “막달라 마리아“는 죄인의 몸으로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은 여인입니다. 당시“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마귀에게 잡혀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주셔서 죄 사함을 받고 그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보필한 여인입니다.“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은 평소에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복음서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인간과 똑같은 인성 즉 육신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를 보면 사랑을 느끼며 또한 사랑하는 여인과 정을 나누고 싶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예수님 가까이서 지극정성으로 섬긴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죄 가운데서 구원시켜주신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과“막달라 마리아“가 자주 만나면서 서로 정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사복음서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외경인”마리아복음서”“빌립복음서”그리고“도마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댄 부라운이 기록한“다빈치 코드”를 보면“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아기까지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성경을 편집을 하던 성경학자들이”마리아복음서”“빌립복음서” 그리고“도마복음”을 성경에서 제외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은 외경들을 한번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외경(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경)에 기록된 “마리아 복음서““빌립복음서” 그리고“도마복음서”“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기록한 내용 일부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마리아 복음서 17:9-20 안드레가 형제들에게 이르노니 자매(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주께서 이 말씀을 하셨다니 도저희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던 것과 너무도 다릅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하길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이런 식으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니 가당키나 합니까? 관습을 뒤엎고 여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옳습니까? 정녕 우리보다 더 사랑하사 이 여자를 택하신 것입니까?

 

상기의 말씀은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주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니 도저희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것과 너무도 다릅니다” 라고 말할 때 베드로가 듣고 말하길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이런 식으로 이 여자에게 말씀하셨다니 가당키나 하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관습을 뒤엎고 여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옳으냐고 말하면서 “그러면 정녕 예수님은 우리보다 마리아를 더 사랑하여 이 여자를 택하신 것입니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이 어떤 사이라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빌59:9)

 

예수는 어느 사도보다도 마리아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셨다 자주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기까지 했다. 그가 마리아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안 사도들이 물었다 왜 저희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시나이까? 이에 예수가 대답했다 내가 그녀만큼 너희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게 가당키나 한가? 상기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 어느 사도들보다도“막달라 마리아“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주“막달라 마리아“의 입술에 입맞춤까지 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왜 우리보다“막달라 마리아“를 더 사랑하느냐고 항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을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조금도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의 아들로 신성을 가지고 계시지만 육신의 몸도 입고 계시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혈기 왕성한 “30대”의 예수님이 아름다운“막달라 마리아“를 보고 연정을 느끼며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도마복음서 114편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다. “마리아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여자들이 생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그 여자를 남자로 만들도록 인도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여자도 너희 남자들과 같이 산영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이렇게 남자로 창조된 여자들은 누구나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이 말씀의 해설은  저의 불로그 카테고리 안에 도마복음해설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상기의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 예수님과“막달라 마리아“의 사랑을 지켜본 베드로가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예수님에게 이제“막달라 마리아“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보라 내가“막달라 마리아“”남자“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여자“도 말씀을 통해서”남자“로 창조 될 수 있고”남자“로 창조되면 누구나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여자와 남자“ 영적인”여자와 남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정결한 처녀”를 말하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진 자를 말하며”정결한 처녀”인간이 거듭나면”남자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예수“가 거듭(부활)나면”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이같이 단계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아직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뜻이나 행동을 모두 육적으로 듣고 알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수석제자인 베드로도 거듭나기 전에는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막달라 마리아“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를 넘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 실망하는 것은 물론 예수님의 신성까지 무너지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복음서들을 성경기록자들이 모두삭제하고 외면하며 지금까지 숨겨 온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야 하며 숨겨진 거짓도 모두 드러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 모두 알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며 어머니 마리아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고 죽어서도 안 되는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돌아가셔서 차디찬 시체가 되어 무덤에 누어 계신 것입니다. 인간들의 생명은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또한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하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고 죽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죽으셨고 이제 다시 부활하신다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다시 산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죽어서는 안 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와 물을 다 흘리시며 죽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다시 부활이 있을 수 없고 또한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마술사와 같이 죽었다고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예수님의 탄생은 동정녀마리아 몸에 성령이 잉태해서 예수가 태어나신분이라고 지난2000년 동안 믿고 있으며 전 세계기독교인들이 성탄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은 성령으로 육신이 잉태되어 예수님은 몸 자체가 성령덩어리요 하나님이라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몸은 인간의 몸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몸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 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의 몸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 안에 성령이 잉태되었다면 예수님의 몸은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몸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죽었다면 예수님도 당연히 우리와 같이 다시 부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예수님은 성령으로 몸이 잉태되었다는 것과 예수님의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났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같이 성령이 잉태되고 예수님과 같이 부활이 된다면 지금까지 감추어 있던 예수님의 실체와 비밀들이 모두 확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예비 일에 예수님을 장사하고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동이트기 전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급히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시신이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예언하신 대로 이미“죽은 자 가운데”다시 살아나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함께 달려가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 먼저 무덤에 도착하여 무덤 속은 두려워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베드로가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예수님이 없어진 것을 알았으나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성경이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난다고 하신 말씀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은 죽은 예수님이 3일 만에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믿지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서 가지고 간 것으로 생각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삼년 반 동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로 믿고 따르며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신다는 말씀,“죽은 자 가운데”부활하여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또한 믿지도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계속-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