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는 군병들 ”
요 19:23-27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해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시22:18)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 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 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해설: 로마 군병들이 예수를 못 박은 후 예수님이 입고 있던 옷을 취하여 네 조각으로 나눠 각각 한 쪽씩 가졌고 예수님이 입고 계신“속옷“도 취하니 이“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해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습니다. 군병들이“속옷“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속옷“은 찢어서 나누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를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예수의”옷”을 나누고 예수의”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구약성경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미 예언된 말씀들이 지금 일어나는 것인데 심지어 예수님이 입고 계신”옷”을 제비뽑는 것까지 예언이 되어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입으신”옷”은 말씀의”옷”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옷”이“겉옷”도 있고“속옷”도 있으므로 말씀도 표면적 말씀이 있는가 하면 안쪽 깊숙한 곳에 감 추인말씀도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모두 하나님께서 깊이 감춰진 비밀의 말씀이기 때문에 밖으로 쓰인 문자적으로는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안쪽으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은 천상천하에 볼 자가 없기 때문에 사도요한은 크게 울었다고 합니다. 계 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 하였더라, 일곱 인으로 봉했다는 것은“6일 천지창조”가 완성된 다윗의 뿌리로 나온 예수님이외에는 아무나 볼 수 없게 자물쇠로 채워났다는 말씀입니다.
밖으로 쓰여 진 포장지 같은 성경문자는“육”이라고 할 수 있으며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그 문자 속에 깊이 감추어진 내용물은“영”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셨습니다(마13:34) 그러므로 “비유비사”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막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표면적인 말씀으로서“겉옷“이라 할 수 있고”속옷”이란 그 비유 속에 감 추인 진리의 새 말씀을 뜻합니다. 시편에 이미 예언되어진 대로 군병들이“겉옷“을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취했다고 했습니다(시편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인(겉옷)이 온 세상 사방에 나누어짐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복음(겉옷)이 한 교단으로 전파됨이 아니라 수많은 교파로 갈리어 전파됨을 뜻하여, 이를 예수님의 겉옷을 넷으로 나눠가졌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겉옷”즉 밖으로 쓰인 문자 성경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속옷”에 대해서 살펴보면 예수님의”속옷”은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로 된“통짜속옷”입니다. “통짜속옷”이기 때문에, 성경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의 논리로 취합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비유비사“로 된 성경 전체가 하나로 정연한 논리로 밝히 드러낸 진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통짜속옷”은 나눠 갖지 아니하고 제비뽑기 하여 어느 한 사람이 갖기로 한 것입니다.
제비 뽑아 어느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통짜속옷”이기 때문에, 말씀 또한 이 교단 저 교단으로 나눠짐이 전혀 없습니다. 제비 뽑힌“통짜속옷”은 오늘의“실존예수님”의”속옷”의 말씀으로 깨달은 거듭난 자들에게 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이“통짜속옷”이 됩니다. 제비 뽑힌 말씀(속옷)은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오늘의“실존예수님”한분의 말씀으로 책정되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오늘의 영적 무덤에 있는 우리가 생명의 부활로 나오기도 하고 사망의 부활로 나오기도 하는 전무후무한 단 하나“통짜속옷”으로 짜인 진리의 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통짜속옷”을 소유하고 있는 오늘날의“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군병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는데 예수님이 달려계신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에게 말씀하시되“여자여 보소서 당신의 아들입니다”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시니 그 때부터 그의 제자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어머니보고“여자여 보소서”라는 말은 가나혼인잔치에서 예수가 어머니보고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는 말과 같이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 하였다, 라는 말과 같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기 전을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돌아가시면서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가 염려되어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만 계신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항상 자신을“인자”라고 말씀하셨는데“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며 곧“인간 예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인간 예수”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인간 예수”를 모르면 천국은 물론 구원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인간 실존예수”입니다. 왜냐하면 이분이“통짜속옷”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 19:28-30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해설: 예수님은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말씀하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그곳에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목마르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아 마신 후 가라사대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 하시고 머리를 숙이셨고 예수님의 영혼이 돌아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혼이 돌아가셨다는“영혼”은 원문에“프쉬케(혼)”가 아니라“프뉴마(영)”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혼”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영(성령)”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몸 안에 하나님의“성령“(말씀)이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 지금까지 예수님과 함께 계시던“성령“(말씀)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 가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오셔서 성경대로 생을 마감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인지 그 뜻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다 이루었다“는 이 말씀을 오해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다 사해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또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내가“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12제자”들을 완벽하게 하나님의 아들인 “구원자예수”로 완성시켰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구원시킨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영접한 12제자를 구원시켜 하나님의 아들예수로 완성하였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일을 모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인간 실존예수”즉 하나님께서 보내주신“예수”를 믿지 않고 배척한 자들은 구원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천년 전에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던 역사적인 예수님이나 앞으로 다시 오실 미래의 재림예수만 기다리며 믿을 것이 아니라 오늘날 살아계신“실존예수”를 믿어야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예수는 기독교인들 주변에 항상 존재 하고 계십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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