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말씀

헌금과 십일조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인터넷상~질문에대한 답변) 1.

제라늄A 2018. 12. 30. 13:03

 

 

 

루터, 칼빈은 천주교에서 나올때 면죄부는 물론 십일조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이후 천주교 마저 십일조를 포기하자 유럽에는 십일조가 사라졌다. 천주교는 곡물, 가축 십일조를 받아왔었다.

 

개신교가 미국으로 건너간지 300년 후인 180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십일조가 탄생했으니 그것은 ' 수입'의 십일조로서 돈으로 십일조를 내는 방식이다. 몰몬교, 안식일교에서는 십일조가 의무이고 1950년 부터 본격적으로 개신교 교회에 십일조가 광범위하게 퍼졌다.

 

현재 미국은 1천만명 정도의 신자가 십일조를 낸다고 한다. 10년전 CBS TV 조사에 의하면 미국 목사 59%는 십일조를 비성경적이라 믿고, 41%는 성경적이라 믿는다 한다. 하지만 강단에서 십일조를 강조하는 목사는 소수라한다. 왜냐하면 신도가 교회를 떠날 것을 우려해서.

 

하나님에게 바친다는 구약 말라기식 십일조를 하는 신자도 있지만 다수의 신자들은 신약의 giving 정신으로 교회에 기부한다는 생각으로 십일조하는 것 같다. 기부를 하되 수입의 10% 이상을 기부하는 것이 십일조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개신교는 십일조를 구약적으로 하나요, 신약적으로 하나요?

매칭된 토픽개신교 종교 2018.05.21 신고

 

 
헌금과 십일조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



[사도행전 17장]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만유를 지으신 주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을만한 부족한 것이 없다고도 합니다. 이 말을 꼭 해야 알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라 하면서 십일조와 헌금을 하게 하지만 본 사도행전을 읽어봐도, 서신을 봐도 어디에도 헌금을 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형제들 끼리 서로 돕기 위한 수단, 서로에게 낮아짐을 실천하는 수단으로 연보를 하는 이야기는 자주 등장을 합니다.



결국 그것을 누가 가져다가 누립니까? 굳이 필자가 말 안 해도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남에게 나누어 준다고 해도 그것은 그가 누리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욕구를 따라가는 속성이 모두 달라서 어떤 이는 명예욕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어떤 이는 돈에, 어떤 이는 권력에, 어떤 이는 사랑에 각각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한결같이 본능적인 욕구에 목숨을 거는 것이므로 모두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서로 타협하기를 명예욕에 목숨을 거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이라 쳐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기보다 나눠주고 이름을 얻는 욕심을 부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의 입장에서 자기에게 득이 되는 것이므로 봐주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뿐입니다. 명예욕은 이와 같이 감춰진 욕망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자기 눈의 들보” 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유태인이 주장한다면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모세율법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란 헌금을 해야 하는 모세율법이 폐해지고 마음의 법이 세워졌다는 것을 주장하며 세워진 종교이므로 그리스도교 안에서 헌금은 불법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의 기록인 복음서에 그것이 나온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십자가 사건 이전, 즉 모세율법이 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있을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는 말은 당시의 유태인들은 그래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세율법 안에서 낳아진 자들이고, 또 마음의 법을 받아들인다면 두 법에 모두 적용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본 사도행전에서와 같이 유대인이 그리스도교를 믿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할례를 주장했고 그것이 타당하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킨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무할례의 답을 얻어 이방인들의 짐을 덜어주었던 것입니다.



또 말라기에서 하나님은 인생들이 돈이라고 여기는 십일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빌미로 하여 공의 관장자들이 돈을 벌어서 가져오게 했고 또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동일한 말라기 안에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라기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그리고 이 말씀 이전에 있는 모든 말씀이 패역한 마음으로 가져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질타의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 단지 마지막의 한절만 그들의 마음에 들어간 것입니다.



위 말씀은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바로 헌물이나 십일조란 돈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수단으로 삼으라고, 마음이 약하므로 자각할 수 있는 기능으로써의 행위의 율법을 주신 것인데 인생들이 마음은 딴 데 두고 행위만 하니 그것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 것이며, 성전 문을 닫기를 바라신 것이며, 또한 이것은 폐한 행위의 율법입니다. 이제는의 율법 을 지켜야 하고 마음을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이후의 인생들도 여전히 이 말씀을 가져다가 유물을 거두어들이는 수단으로 쓰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 오늘, 성령의 법을 안 우리 역시 이 육신을 살려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영이 사는 수단으로써의 육신의 삶이 아니라 육신이 사는 것이 목표가 된 악을 향한 마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면 결국 육신의 병에서도 자유로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 안에서 앞의 전제가 이러한데 뒤의 말씀만을 마음에 두고 행하는 것이 바로 육신을 살려둘 가치를 스스로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따라서 가는 이들의 결국은 그저 흙으로 돌아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내가 이방인으로서 본 포도나무에 접 붙은 가지 입장에서 내 가지에서 나를 열매로 맺고, 말씀을 따라감으로 연단 받아 익게 하면 하나님께서 "처음 익은 것은 다 내 것이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헌금은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지 말라"는 말씀에 대하여 "불법"입니다. "피채 먹지 말라" 한 법은 구약과 신약에 동일하게 언급된 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하나님을 향함으로 인하여 당하는 희생, 즉 아벨의 피부터 시작하여 스데반의 피까지 모두 "희생"입니다. 그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나 먹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안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조차 잘못된 것입니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게 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마음으로 "약간의 유익"이 있는 육체의 연습 차원에서 금식과 베품을 하되, 베품을 받는 상대가 베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또한 금식을 해도 타인이 모르게 나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라서 상대적 사랑이 아닌, 대가는 하나님께 받겠노라는 마음으로 베풀고 금식하는 희생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 희생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처럼 육적인 질서 안에서 "위로" 드리는 것은 그 관장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일 뿐이며, "아래"로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이 "될" 피전도자에게 드리는 것이므로 그것이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드림으로 하나님께 받는 것은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최종 목적인 하나님의 안식에 들기 위하여 내 마음의 악을 지우게 하시는 "지혜를 깨달음 받는 것"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마 7:23]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는 말씀을 듣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헌금은 단지 금식처럼 약간의 유익이 있는 육체의 연습을 위하여 위가 아닌 아래로, 간접이 아닌 "직접" 하고, "알게"가 아니라 "절대로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네이버 성경까페 "갈 릴 라 이 아" 에 있는 글입니다. 도움이 되길 바라며 올려드렸습니다^^


 

답변

 


Q
부모님은 재벌이고 나는 학생인데 용돈 드려야 하나요?


비유를 하실려면 제대로 하셔야지.
'님은 돌아가신 고조 할아버지에게 용돈 드리나요?'


도대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돈을 어떻게 드린다는 건가요? 어리석은 짓 중단하세요. 우우리 부모도 재벌이지만 하나님도 살만할텐데 님과같은 엉터리 신자로 부터 돈 받으시
겠어요?


믿을려면 제대로 믿어야지 미신적으로 믿어서야 구원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