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과 율법

※ 율법은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역활을 하는가? (아주 중요한 말씀) ※

제라늄A 2020. 5. 5. 02:11

 

                    ※※※ 율법은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역활을 하는가? ※※※ 

율법의 역활은 세상(애급)에서 신앙 생활하는 종교인들에게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깨닫게 해주는 역활을 해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나서 이미 하나님의아들이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에 비춰보면 이 율법기독교인들에게 바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미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기독교 안에는 율법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천년 전에 예수께서 모든 죄를 다 담당 하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사해졌고 율법도 도말했기 때문에 율법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실체는 무엇인가?  율법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죄라는 것을 알려주고 또 죄 속에 완전히 가둬두는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인 것입니다. 율법 앞에 의롭다하는 육체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제자들 외에는 율법 앞에서 의롭다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죄 사함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율법이 없이 교리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의롭다함을 받아서 아들이 됐다고 가르쳐주고 그것을 믿으라고 하니깐 율법 없이 아들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다 되어있기 때문에 아무나 하나님아버지라고 부르며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또 죄인이라고 받아드리는 사람도 없고 모두가 기독교인들은 의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신 것인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이 말 한마디에 율법과 죄가 다 도말 된 것으로 오해를 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내려오면서 이것을 배척을 하고 율법을 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없기 때문에 또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애급이라는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인으로 있다가 죄인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죄인은 어떤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느냐? 

 

욕심과 탐심과 무지 속에 살고 있는 자들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불신자나 기독교인들이 욕심과 탐심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천국으로 가려는 그 자체가 욕심이고 탐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천국을 갈려는 그 자체가 욕심인데 기독교인들은 아니 천국가려 하는 것이 왜 욕심이냐고 항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자체를 모르면서 천국을 가려고 하는 것이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다 만들어놓고 기독교인들에게 제시하고 그 길로만 가라는 것입니다. 다른 길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내가 간 길을 너희도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 길을 가지 않고 그냥 쉽게 천국을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욕심이 어디 있습니까, 왜 그러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무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알면 이런 욕심이나 탐심은 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각종교리에 의식화되어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것이 올바른 관념으로 착각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을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틀에 갇혀 그 거짓목자의 말을 올바른 말이라고 믿고 신앙생활 하는 그 자체를 죄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급에 있는 종교인들 즉 기독교인들은 죄인이 아닌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10~11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하나도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애급이라는 세상에서 종교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은 도대체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이런 무서운 죄인들인데도 이들이 전부 의인 의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율법은 무엇을 말 하는가?  율법은 죄인들의 죄를 더 가중시켜 죄 속에 가두는 역할을 하는 것이 곧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이 사람들을 모두 죄 속에 가두는 목적은 무엇인가 목적이 있기 때문에 죄 속에 가두는 것 아닙니까?  율법이 죄인들을 가두는 이유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탐, , , 이런 잘못 의식화되어 있는 고정관념깨고 부수어 그 육신자아라는 존재를 죽이고 무아로 만들어서 진아로 다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죄인이라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  깨닫게 해주는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되고 그 죄를 사해 줘야하는 것입니다. 그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깨고 부수는 역할을 바로 율법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애급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고정관념들이 다 부서지고 없어져야 깨끗한 몸으로 출 애급을 해서 광야를 거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서지지 않으면 절대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자아가 없어져야 도 없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잘못 오해 하고 있는 것이 죄와 회개인데 기독교인들의 죄와 회개는 세상에 살면서 도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지은 죄를 죄라고 생각하고 그 죄를 사해 달라고 눈물 코물 다 흘리면서 많은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회개하면 다 사해주신다고 했으니깐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회개를 하고 통곡을 하면 속은 시원할는지 모르지만 그 죄가 없어집니까? 그렇게 많이 기도를 했으니깐 하나님께서 당연히 죄를 사해준 것으로 일방적으로 믿고 있는 것뿐이지 아무리 회개를 많이 해도 그 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언제까지 회개기도를 하느냐 죽는 그 날까지 해도 그 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자는 회개하면 천국이 보이고 사함을 받는다고 하시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천국은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하면 죄와 회개 자체를 모르고 하고 있고 잘못 회개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실체 그 근원을 모르고 회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럼 죄가 내 몸에서 완전히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하느냐, 이러한 문제를 기독교인들은 잘 알듯하면서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근원은 무엇인가 바로 내 자신이 근원입니다.

 

내가 없다면 죄를 지을 근원이 없는 것입니다. 자아가 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지 내가 없으면 죄를 질 수도 없고 죄가 발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없는데 어떻게 죄를 짓겠는가, 죄는 내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죄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실체는 바로 나의 자아인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죄 덩어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거듭나기 전에는 죄 덩어리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죄 덩어리를 어떻게 하면 씻을 수 있느냐 이것은 내 존재가 있는 한 근본적으로 없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를 없게 할 수 있느냐? 

 

바로 내 자아가 없어지면 죄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 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 내 자아가 죽는 만큼 그 죄는 사함을 받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가100% 죽으면 죄가100%사함을 받고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사해달라고 회개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죽여야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죽은 만큼 죄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죄 사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죽어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바로 사함을 받기위하여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시퍼렇게 살아있으면서 죄만 사함 받으려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죄는 사함 받았다는 이렇게 잘못 오해를 하고 있고 아직도 나는 그냥 살아 있는데 죄 사함 받았다고 이렇게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입니다. 죽어야만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몸은 도저히 사함 받을 수 없는 죄의 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애급이라는 세상에서 신앙 생활하는 기독교인들은 죄 사함을 받지 않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은 죄 사함을 받기위해서 죽으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율법을 아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왜 죽으려고 하느냐하면 애급의 기독교인들은 그냥 죽지 않고 살려고 하는데 율법을 아는 자들은 죽어야만 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죽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율법을 아는 자들은 죽으려고 하니 이렇게 서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가는 길이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이 다르고 법이 다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교리를 통해서 살아가는 자들이고, 율법을 아는 자들은 율법을 통해서 죽어야 하는 자들 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지 않으면 절대로 부활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육의존재인 이 자아는 정말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해갈려고 하고 가진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살고 싶은 마음을 죽고 싶은 마음으로 바꿔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돌이 켜야 이것을 회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나를 죽일 수 없으면 근본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나를 죽일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가 있는 진리의 말씀으로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8:11)  똑같은 말씀이라도 씨가 있는 말씀이 있고 씨가 없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태산을 이루는 수많은 말씀을 들어도 기독교인들이 변화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가 없는 말씀을 먹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씨를 가진 말씀을 만나 그 말씀을 먹기만 하면 내가 노력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자체가 능력임으로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고전 3:6-7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말씀)뿐이니라, 이 말씀은 바울과 아볼로는 말씀을 뿌렸지만 자라나게 하는 것은 말씀(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자체가 나의 자아를 죽여주는 입니다.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 자체가 곧 하나님이십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