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사람에게 잡아먹히는 사자는 행운이 있다.

제라늄A 2020. 10. 5. 20:55

 

도마복음 7절,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잡아먹히는 사자는 행운이 있다. 이는 사자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사람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사람이 사자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도마복음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은 “사람“에게 잡아먹히는 “사자”는 행운이 있다고 합니다. 즉 “구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사자”를 잡아먹으면 “사자”가 “사람“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사람“이“사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사자“를 잡아먹는 다고  “사자“가 “사람“이 되고 또한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는 다고 어떻게 “사람“이 “사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기독교인들이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해괴한 말씀을 모두 ”비유“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도마복음“을 성경에서 삭제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로 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예수님은 ”도마복음서”에 “비유”로 기록하셨을까? 

이렇게 해괴한 말씀들이 ”도마복음서”전체가 “비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이런 말씀은 한 문장도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아예 ”도마복음서”를 성경에서 삭제했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수석 제자인 도마가 기록한 “도마복음”이 삭제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인간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해괴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진실만을 말씀하시는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도마복음서”는 성경신학자들에게 전혀 손을 타지 않은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감추어져 있다가 이 시대에 발견된 것으로 당시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이 조금도 “가감"되지 않은 채 모두 보전되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리의 길을 찾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이며 가장 귀중한 보물 중에 보물이기 때문에 이“도마복음서”를 이해를 하시는 신앙인들은“영안“이 열려 신구약 성경을 통달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마복음서”를 이해하시는 분은 이미 “영생”을 소유하신 분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영생”(요17:3)이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통달하는 자는 이미 “영생”을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모두 “비유 비사”로 인간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에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한 구절도 해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마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막 4:11-12 예수께서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같이 성경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비유”라는 것입니다. 특히 “도마복음서”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의 영적 의미를 알게 되면 어떠한 난해한 성경말씀도 너무나 당연한 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 말씀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자“는  실제 “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영적 상태에 있는 어둠의 존재들 중에서 제일 큰 자가 “사자“인데  성경에서는 어둠의 존재들을 각종 짐승들로 ”비유“하는데 ”사자“는 짐승들 중에 제일 큰 자이므로 어둠의 존재들 중에 제일 큰 자가 2000년 전 당시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며 오늘날은 기독교 목사를 “사자“로 ”비유“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둠의 존재를 “물고기, 새, 각종 짐승들”로 “비유”하기 때문에 “사자”는 짐승들 중에서 가장 큰 자이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인 기독교 목사를 “비유”한 것입니다.  욥 12:7 모든 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런 물고기나 각종 짐승들이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물어보며 설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같이 성경에서는 “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한 어둠의 존재들을 모두 ”물고기, 각종 짐승, 새”들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나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을 ”짐승“들 중에 제일 큰 자이므로 “사자”로 “비유”한 것은 아직 “사람“의 영적 상태로 거듭나지 못한 “짐승“의 영적 상태에 있는 어둠의 큰 존재들을 “비유”하여 “사자“라고”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이해할 때 상기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오늘날 기독교는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세상 만물 창조로 이해하기 때문에 ”도마복음“은 영원히 해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6일 천지창조”는 “세상 만물 창조”를 “비유”해서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창조하는 것이 ”창세기 6일 천지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6일 천지창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세상이라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영적 상태에 있는 어둠의 존재들이 종교생활을 열심히 해서 육지로 나와 땅에서 사는 “기는 짐승“의 상태로 거듭나고 “기는 짐승“의 상태에서 거듭나면 “걷는 짐승“으로 거듭나고 이들이 또 거듭나면 ”축생“(양)이 되고 ”축생“이 거듭나면 ”여자“의 영적 상태로 거듭나고  또 ”여자“에서 거듭나야  ”남자 사람”의 영적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종 짐승들로 “여섯 단계”(6일 창조)를 거치는 것이 “창세기 6일 천지창조”입니다. 다시 말해 “땅”(地)에 사는 어둠의 존재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섯 단계”(6일 창조)를 거쳐서 하늘(天)의 존재로 창조하는 것이 창세기 6일 천지창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창세기 천지창조“를 자연 만물 창조로 해석을 한다면 본 문장은 영원히 해석할 수 없는 난해한 문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나오는 각종 ”물고기, 새, 짐승”들은 아직 “사람”의 영적 상태로 거듭나지 못한 어둠의 존재들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양“이라고 ”비유“로 하신 말씀도  아직 ”사람”의 영적 상태로 거듭나지 못한 제자들이 “축생“의 영적 상태를 “비유“로  내 ”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같이 성경에서는 “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한 이 땅의 어둠의 존재들을 모두 ”물고기, 각종 짐승, 새”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인들은 이런 말씀을 처음 보는 말씀이라 무슨 말씀인지 전혀 감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예수님께서 12제자들에게 3년 반 동안 양육시켜 구원을 시킨 것은 곧 제자들의 영적 상태는 “물고기 짐승“들이 거듭난 ”축생”의 영적 상태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장의 말씀에 “사람”이 “사자“를 잡아먹으면 “사자“가 “사람“이 되지만 만약에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사람“이 “사자“와 같이 된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이신 ”예수님”에게 잡혀 먹히는 “목사“(사자)가 ”행운”이 있다고 하는데 이 ”행운”은 “사자“인 목사가 "사람"이신 예수님에게 잡아먹히면 ”목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가“사람“이신 ”예수님”에게 잡혀 먹히면 “사자“인 목사가 “사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구약 성경도 일상용어로 기록되어 누구나 읽어 볼 수 있게 기록되어 있으나  실상은 모두 안팎으로 비유 비사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이기 때문에 거듭나서 영 안이 열리지 못하면 ”도마복음“은 물론 신구약 성경도 절대로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문자성경을 그대로 이해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비 진리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모두 왜곡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실존 예수를 영접하는 자들만이 비유의 말씀을 깨닫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실존 예수님으로 오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실존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 이단으로 배척하기 때문에 2000년 전 유대교 때나 오늘날에도  실존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에게만 비유의 말씀을 깨닫게 되어 구원과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