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같은 의미로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어느 성경구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기록이 되어 있고 어느 성경구절은 “그리스도 예수”로 기록되어있는데 기독교인들은 물론 신학박사도 그 말이나 이 말이 무엇이 다른지 모릅니다. 또한 “초림 예수, 재림 예수”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를 못하며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 오신 예수가 “초림 예수”로 알고 장차 구름 타고 오실 예수를 “재림 예수”를 알고 있을 뿐 더 이상은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초림 예수”는 십자가 전과 십자가 후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배 때에도 예수의 이름을 믿고, 말끝마다 예수 예수 그 어떤 죄도 예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용서받고 천국 갈 수 있다고 합니다.“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하면 성경이 절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예수는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죽기 전에는 예수지만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즉 메시아 구원자가 되십니다. 십자가에 죽고 부활해야만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시며 죄 있는 자들을 죄를 속량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물에 잠길 때는 "예수"의 죽음이요, 물밖에 나올 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죽고 "그리스도"로 부활하신 것과 똑같은 의미입니다. 이같이 "예수"에서 “그리스도”로 부활해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와 있다고 구원의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을 때 "예수"에서 “그리스도”가 되며 죽은 영혼을 살리실 때 이것이 예수가 죽은지 “3일” 만에 부활하신 감춰진 비밀인 것입니다.“죽고, 부활, 영혼구원” 이것이 “3일” 길이며 “애급, 광야, 가나안” 길이 “3일” 길입니다.
예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 내가 “3일” 만에 다시 짓는다는 “3일”이라는 것은 모두 감춰진 비밀입니다. 그리고 노아방주가 “3층”으로 지어졌고 예루살렘성전이 “3층”으로 지어졌으며 사도바울이 비몽사몽간에 다녀왔다는 셋째 하늘이 “3층”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가는 길이 “3일” 길이요, 성경에서는 “3일” 길이라는 엄청난 비밀이 깊이 감춰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3일 부활”의 깊이 감춰진 비밀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가신 길을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동일하게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육적으로 십자가에서 죽고 육적으로 부활하셨던 사실은 오늘날 예수님이 영적으로 죽고 영적 부활의 그림자 예표로 보여주신 “비유 비사”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기독교에서 받은 문자 성경으로 잘못 형성된 기독교인들의 육체의 성전이 죽고 진리의 새 말씀으로 다시 부활을 받게 되면 기존의 사망 세상에서 탈피한 새 생명으로 부활되게 하는 영생 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 기독교에 입문해서 기독교 목사의 말씀을 영접한 기독교인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으면 진리의 새 말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갈2:20) 다시 살게 되고, 기독교인의 사망의 몸이 영생을 얻게 되는 창조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같이 죽고 다시 부활하는 일을 최초로 본을 보여주시며 “예수께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고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반드시 대속의 조건이 바로 예수님의 가신 길을 기독교인도 동일하게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속을 위해 육체의 십자가를 지셨다면, 기독교인도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를 지고 옛 사람인 육체의 성전 즉 기독교 목사에게 받은 “비 진리”로 잘못 형성된 육체 성전 즉 “겉 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부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리고 오늘날 예수님이 다시 육체를 입고 오시듯이 기독교인 또한 옛사람이 아닌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 진리의 새 말씀을 기독교인에게 전해 주시듯이 기독교인 또한 진리의 새 말씀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위해 반드시 진리의 말씀을 전해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대상자는 불신자들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목적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잘못 믿기 때문에 유대교인들을 구원하러 유대인의 "실존 예수"가 오신 것 같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잘못 믿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가 오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면 항상 그 나라에 실존으로 예수가 계셔야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에 실존으로 예수가 계셔야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실존 예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구원할 예수님은 항상 그 나라에 "실존 예수님"으로 계셔야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에 "실존"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실존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하십니다(요6:55) "살과 피"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해주는 자의 입장은 "희생의 피"를 주는 것이고 복음을 받는 자의 입장은 "살과 떡"을 먹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떡"을 먹고 살아난 자는 자신의 "희생의 피"로 죽은 영혼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주는 자의 입장은 "희생의 피"를 주는 것이고, 먹는 자의 입장에는 "살과 떡"을 먹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희생의 피"를 주는 자의 입장은 그리스도가 되신 "재림예수님"이 되시고 받는 자의 입장은 "초림 예수님"의 "살과 떡"을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성찬식에서 행하신 “살과 피 떡과 포도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성경에 기록된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초림 예수"가 아니라, 오늘날에 계신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로 부활하신 오늘날 "실존"으로 계시는 "재림예수님"을 영접해야 죽었던 자신의 생명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실존 예수”가 계셔야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 전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한국인 기독교인들은 "실존"으로 계시는 "예수님"을 전혀 모르고 이단으로 배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8:20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고, 한탄하십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