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성령”을 받는 것이며 성령으로 거듭나면 영원한 생명을 보장을 받으며 “구원의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는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고전2:10)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안팎”으로 기록된 성경의 천국 비밀인 “비유”의 말씀까지도 모두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 비밀인 하나님께서 감추신 “비유”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면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성령이 임한 자는 성령이 가르치기 때문에 “안팎”으로 기록된 성경의 모든 “비유”를 통달하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비유”로 기록된 성경이 자신의 눈에 보인다면 그 사람은 이미 “계시”의 눈이 열린 거듭난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의 눈이 열리기 때문에 성경을 통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 11:27 계시를 받은 자가 아니면 아버지를 알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 시기 때문에 “영“으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의 눈이 열려야 선지자들이나 예수의 제자들이 성경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일곱인”(계5:1)으로 “안팎”으로 “봉한”한 성경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기록자들이 모두 다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눈이 열려 거듭났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신학”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만이 알 수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은 “육”이기 때문에 “영“의 세계는 “영”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계시”의 눈이 열렸기 때문에 성령(말씀)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로 “비유”(눅8:11)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낳는 것이 “씨”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씨”로 낳은 사람은 “계시”의 “영”이 열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의 눈”이 자신에게 열릴 때 하나님의 생명인 “씨”로 거듭난 자들만이 알 수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은 “육”이기 때문에 “영”의 세계는 “영”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계시”가 열리기 때문에 성령(말씀)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 16:13 “성령이 임하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 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같이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성령이 가르치기 때문에 성경을 통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 구약 모두 “비유와 비사”로 깊이 감추어 있지만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천국 비밀과 예언을 기독교 “신학”에서 배운 것과 “주석” 혹 자기 생각으로 해석하여 거짓되게 풀거나 역사와 교훈에만 치중하여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의 생명은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신(神)의 말씀은 사람이 만든 “신학”을 했다 해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경우를 보면 가말리엘의 최고학부를 나온 유대 종교 최고의 지도자로 “계시”의 눈이 열린 후에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신학”의 지식을 배설물같이 버렸다고 합니다(빌3:8)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 가전 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이렇게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의 눈이 열린 후에는 자신이 소유했던 “신학”은 배설물로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신(神)의 말씀은 “신학”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각 있는 기독교인들은 소경 된 무지한 기독교 목회자에게 구원이 없음을 깨닫고 성령의 가르침이 있는 곳을 하루속히 찾아가야 자신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뜻을 모르면 영적인 이방인이 될 뿐 아니라 기독교 목회자들의 “비 진리”의 “독”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한 천국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사실상 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비유”로 기록된 성경을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제하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계22:18~19)고 하신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가감되면 그 영혼은 이미 죽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이 살기 위해서 또한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성경의 말씀처럼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은 어디 있는지 찾아 나서야 할 때입니다.“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는 반드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은 “계시”가 열린 오늘날 “실존 예수”를 영접해야 그 말씀의 “씨”로 낳음을 받아야 거듭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말씀의 씨”로 거듭난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밖에는 “실존 예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같이 “씨”는 하나님의 실체가 “말씀”이 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못 알아듣는다면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유대인들이 “실존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하고 죽인 이유는 유대인들과 예수님과 “말씀의 씨”가 다르기 때문에 너희 아비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마귀”라고 하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같이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실존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단으로 배척하는 이유는 바로 “말씀의 씨”가 다르기 때문에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일장”에 누가 누구를 낳고 낳는 거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는 족보를 이어가는 것이 “씨”의 본질인 것입니다.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사도바울은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은 있으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사도바울도 예수님께 물려받은 “씨”로 디모데, 디도, 오네시모를 “말씀의 씨”로 낳았다는 것입니다.
요 12:24 예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씨”와 “열매”는 성분이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가 죽으심으로 예수와 똑같은 제자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이와 같이 한 알의 밀에서 똑같은 많은 밀알(아들)을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롬 8:29 하나님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진리의 “말씀의 씨”로 낳음을 받아야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며 “말씀의 씨“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진리의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소유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남”의 증거는 “영안”이 열려 성경말씀이 보이느냐의 여하에 따라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