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 여호와의 신, 나의 신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성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 성경은 “성령과 성신”이 구분이 되어 기록이 되어 있는데 오늘날 성경에는 신학자들이 “성령과 성신”이 구분되지 않고 모두 성령이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성신”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으나 그 종류가 다르고 일하는 사역도 분명히 다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성령과 성신”을 다 같이 하나로 보고 모든 것을 성령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길”을 가는 자는 이런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진리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요 16:7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께서는 육체를 입으셨기 때문에 인간과 똑같이 반드시 성령의 인도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해야만 예수의 신분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신분으로 바뀌는 성신이 임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므로 구원의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신 후 성신(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으셨을 때 구원의 사역을 하신 것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이나 침례의식은 똑 같은 의미입니다. 침례의식은 물에 잠길 때는 “죽음”을 상징하고, 물밖으로 나올 때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을 인간에게 주시기 위해서는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요1:14)을 입고 오셔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실존”으로 오시어 그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예수의 신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으로 성신이 오셔야만 구원의 사역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인간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이 30세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 사역을 못하신 이유는 아직 “그리스도”이신 성신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사역을 못하시고, 성령의 인도로 장성한 자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30세전까지는 성령과 함께 하시면서 꼼짝도 안 하시고 성경에도 그 행적도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육신의 몸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함께 하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성신”이오시지 않으면 아무 사역도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계신 성령은 오직 보혜사 역할만 할 따름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부와 성자는 잘 알고 있는데 성령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성령”은 거룩한 영을 말하며 거룩한 영은 곧 “생명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십니다.“성령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내시는데 성령은 보혜사로 주로 구원의 사역을 돕고 계시며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는 과정의 모든 일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예수께서도 장성한 자로 거듭나기 전에는 광야에서 마귀에게 혹독한 시험을 받으실 때도 강권적으로 성령의 이끌려 보혜사 역할만 하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인간에게도 성령이 임했어도 잘못 지어진 옛 성전인 육신의 성전 자아(自我)를 멸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성신”이 오시지 못하므로 성령도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령의 도움으로 옛 성전을 헐고 새로운 성전을 다시 건축해야 다른 보혜사이신 “그리스도의 성신”이 오셔야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성령도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옛 성전인 육체를 어떻게 멸하느냐? 그것은 오직 진리의 말씀을 가진 이미 “그리스도의 성신”이 임한 오늘날 “실존 예수”그 말씀으로 우리 육체의 자아(自我)를 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은 육체를 멸할 수 있는 보혜사 역할을 합니다. 잘못 지어진 우리육체의 자아(自我)는 우리의 의지로 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멸하려 해도 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자동적으로 물러가듯이 “그리스도의 성신”이 임한 “실존 예수”의 말씀만이 내 자아(自我)를 멸할 수 있게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은 나의 육체를 멸할 수 있게 보혜사 역할을 합니다. 즉 예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것도 성령의 이끌려 침례를 받으신 것이고 “십자가”의 죽음도 성령의 이끌려 죽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침례나 십자가”는 똑같은 의미입니다. 이렇게 “침례나 십자가”후에 이때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신”이 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례나 십자가”에 죽고 부활의 비밀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표상으로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를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이 육체를 십자가에서 멸하는 데는 절대적으로 내 안에 있는 성령의 도움으로만 한다는 것입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여기서 고아라는 말이 왜 나오는가? 그것은 지금까지 설명한 “성령과 성신”을 구분 짓게 해주는 단어가 고아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성령이 우리를 십자가로 인도해 육체의 자아(自我)를 멸하면 그때 “그리스도의 성신”이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의 육체를 멸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나 억지로는 불가능합니다. 전적으로 내 안에 있는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멸하고 “그리스도의 성신”이 임하면 이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갈4:6) 이렇게 옛 성전을 아직 멸하지 않았다면 아직 고아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내 안에 있는 성령의 도움으로 옛 성전을 멸했으면 이제 더 이상 고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갈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롬 8:15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제 분명해졌지 않습니까?
“성령과 성신”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십자가에서 믿음의 행함을 통해 옛 성전을 멸했으면 이제는 고아가 아니라 성신이 임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의 기준은 “그리스도 영”이신 “성신”이 임한 자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유로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헐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짓는다는 말도 너희들의 “비 진리”로 잘못 지은 육체의 “옛 성전”을 헐면 예수께서 다시 “새 성전”을 지으면 이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