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 2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제라늄A 2021. 1. 21. 21:08

 

잠언 30:8-9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물질에 고통이나 재물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잘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라는 기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부하면 배가 불러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두렵고, 너무 가난하면 도적질을 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재물을 적당하게 주셔서 욕심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합리적인 “기도”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호의 호식하며 잘살고 있는 부자나 재벌들은 “기도” 할 때 이러한 “기도”를 인용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한 자들이 이러한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애써 모은 재산을 하나님이 모두 거두어 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기도”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합당한 “기도” 라면 가난한 자나 부자나 모두 동일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상기의 본문의 “기도”는 가난하고 돈 없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도”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거나 깊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지금까지 기독교인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상용어로 기록하였으나 모두가 “비유 비사”로 “안팎”(계5:1)으로 기록된 말씀임으로  깊이 묵상하지 않고 육신의 안목으로 “문자 성경”으로 이해를 하신다면 “비 진리”로 왜곡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 이러한 재물이나 육신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할 때 이런 “기도”를 인용을 하거나 따라서 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외식으로 이러한 “기도”를 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씀이 실감이 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이렇게 잘 못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죽하였으면 유대인(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닌 제자들에게 “너희” 만은 이렇게 “기도” 하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 하라는 “너희”를 오늘날 기독교인으로 오해를 하고 날마다 예배 때마다 “주기도문”을 뜻도 모르면서 염불 외우듯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엄청난 죄를 날마다 짓는 행위인 것입니다.“주기도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라는 말씀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누구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 나오는 “기도”는 예수님의 제자들 같이 거듭난 자들에게 해당되는 “기도”이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기도문”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하고 있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육”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신대 영적인 말씀을  모두 자신의 육신적인 안목으로 볼 수밖에 없고 하나님도 육신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영적으로 읽고 영적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며 말씀도 “영”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은 육신을 입은 육신의 안목으로 문자 성경을 읽기 때문에 많은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신구약”이 모두 “안팎”(계5:1)으로 기록된 말씀이므로  진리의 말씀은 모두 “안쪽”으로 “비유”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으실 때는 깊이 묵상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기의 본문장의 당사자는 과연 어떠한 뜻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을까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들을 깊이 묵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육신”을 가진 몸이므로 자칫 육적인 차원에서 말씀을 “문자 성경” 그대로 이해를 한다면 항상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장의 뜻은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라는 뜻은 “육신의 양식”이나 “재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영의 양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란 뜻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너무 몰라 나의 생각대로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며, 부하게”도 마옵시고 라는 뜻은 “육신의 양식”이나 재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너무 많이 알면 혹시 나 자신이 교만할까 염려되어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는 먼저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과 기독교인들은 “육”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성경”을 이해하신다면 영적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