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사랑과 자비 그리고 징계와 채찍

제라늄A 2021. 11. 28. 21:4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통해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지팡이는 사랑과 자비이며 막대기는 징계와 채찍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말씀은 꿀보다 달고 “징계와 채찍”의 말씀은 쓸개 보다 더 씁니다. 그런데 병든 환자나 죄인들에게는 달콤한 사탕이나 사랑보다 쓴 약과 징계가 더 좋은 보약입니다. 철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달콤한 사랑과 칭찬을 좋아하고 어른들은 쓴 것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고 훈계나 책망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어린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육신에 좋은 축복이나 사랑만 받으려 하고  신앙이 장성한 자들은 힘들고 어려워도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히브리서 5:12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은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 하는 자들이니라,  상기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랜 동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목자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어린 아이들과 같이 목사의 젖(신학과 기복)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영적인 말씀)은 먹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먹는 젖은 삯군목사들이 주는 일반적인 설교 “신학” 교리와 기복신앙을 말하며  어른이 먹는 단단한 식물은 참 목자 “실존 예수”가 주는 “의의 말씀” 즉 “생명의 말씀”을 말합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의의 말씀”인 생명의 말씀은 아직 맛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그리스도 초보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초보에 머물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전하는 “의의 말씀”인 생명의 말씀은 믿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오히려 이단으로 배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과 심판”의 기준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다윗의 “씨”(혈통)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인간 “실존 예수님” 즉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을 믿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영접하면 반드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아들을 믿지 않고 배척을 하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천년 전에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던 “실존 예수님”이나 앞으로 구름 타고 나타날 미래의 예수님은 철저히 믿고 있지만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오늘날의 인간 “실존 예수”는 절대로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단자로 배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오셨던 예수님은 당시에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던 구원자이며 미래에 구름 타고 오실 예수님은 미래에 존재할 자들을 구원하실 구원자이며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할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할 구원자는 오직 오늘날 살아계신 인간 “실존 예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오늘날 “일용할 양식”(생명의 말씀)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오늘날 살아계신 “실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해서 너희는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매끼 밥을 먹을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식사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어야 할 오늘날의 양식은 음식물이나 삯꾼 목사들이 주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살아계신 “실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양식”이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말씀하셨는데(요6:28~29)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구원자는 곧 오늘날의 인간 육체를 가지신 “실존 예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내가 너희에게 보내주는 오늘날의 구원자 즉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을 믿고 육체를 입고 오신 그를 시인하고 영접하면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않고 배척을 하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1서 4:2-3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육체를 입고 오신 오늘날 인간 “실존 예수”를 시인하고 영접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생명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새로 오시는 인간으로 오시는 “실존 예수님”“계시”를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 1: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이 말씀은 지혜로운 자가 잠언의 말씀을 들으면 학식이 더 많아지며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명철한 자가 잠언의 말씀을 들으면 모략을 얻게 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으나 지혜를 소유한 자가 잠언의 말씀을 들으면 “학식”이 더 많아진다는 말씀은 잘 이해가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는데 지혜자도 잠언의 말씀을 들어야 “학식”이 더 많아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으로 태어난 어린아이들이 부모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난 아들(예수)도 아직 어릴 때에는 영적인 말씀을 듣고 보고 행하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께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린양 예수는 영적으로 보면 어린아이이며 그리스도는 장성한 어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적인 생명이나 영적인 생명도 처음에 태어날 때는 모두 어린아이로 태어나는 것이지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도 처음부터 나는 그리스도라 말씀하시지 않고 장성한 후에 내가 곧 그리스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양 이신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인 “꿀과 버터”를 먹으면서 “영”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하면서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철한 자가 얻을 수 있다는 모략은 곧 하늘의 지혜(꾀)를 말합니다. 명철한 자가 잠언의 말씀을 듣고 거듭나면 지혜를 얻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는 것이며 지혜로운 아들이 잠언을 듣고 보면서 장성하면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잠언서는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로 가는 지름길이며 생명이기 때문에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잠언서를 날마다 읽고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실존 예수”를 통해서 잠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언을 듣고 아는데 머물지 말고 말씀대로 행하는 마음의 수행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으면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없고 마음도 변화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이 말씀과 행함을 통해서 “예수의 마음”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라고(마7:21)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