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과 율법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라,

제라늄A 2021. 12. 25. 21:36

약 1:21-25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상기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더러운 것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위장해 놓았지만 속은 온갖 더러움으로 거듭나지도 않았으면서 거듭난 척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더러운 것,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인가를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니 절대 버릴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맞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욕망 적 존재 즉 죄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버린다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버린다는 것은 결국 “죽으라”는 것입니다. 죽어야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의 몸으로부터 오는 “도덕적 불의, 욕망”을 버리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게 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데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의 죽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버리라고 말했지만 “죽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죽음이 아닌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눅 18:28-30 베드로가 여쭈오되 보옵소서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베드로가 우리는 다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나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버린 자는 하나도 없다고 하시며 무조건 버린다고 해서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버렸다고 하는 집이나 아내나 전토는 버렸다 해도 그것은 껍데기를 버리는 것이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너”를 버려라. “죄의 몸인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가 죽은 것과 같이 “너” 죽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내가 죽는 그것이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버리는 것이며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더러운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혼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약1:21) 말씀하신 것처럼  죽어야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십자가의 죽음”만이 더러움이 가득한 불의와 넘치는 악이 마음속에 가득한 죄악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믿음의 자녀답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며 말하기도 성내기도 더디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제거함으로써 “죄의 속성”을 뿌리 뽑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강력한 죄악의 뿌리를 제거한 후에 우리의 마음 밭에 심겨있는 말씀을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도 “육신”이라는 본능적 욕구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문제는 결국 날마다 말씀을 통해 승리하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눅9:23) 더 나아가   약 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음으로 계속 들을 수 있으나 단지 듣는데 그치고 말씀이 행함으로 성취되도록 변화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뜻이 이 말속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 위에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 위에 축복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말씀을 듣는 자는 행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만약에 말씀을 들었다고 하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 많이 있는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자기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거울을 보고나서 자기 얼굴을 기억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을 곧 잊어버림과 같이 아무리 감명을 깊이 받은 말씀도 곧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어버리고 삽니까?  말씀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약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자유하는 온전한 율법은 구약시대의 율법과 대조를 이루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진리의 복음을 말합니다. 곧 생명으로 인도하는 은혜의 율법을 말합니다.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생명 된 은혜의 율법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참된 자유를 찾을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율법을 실행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들여다보고 있는 자란 무슨 뜻입니까? 자세히 살펴보고 그 곁에 거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의 율법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 은혜의 율법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 행함은 바로 축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는 결코 행함으로 나타나며 그리할 때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신앙인들이 진리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고 살기도 참으로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입니까?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의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분의 지배를 받아야합니다.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 “그리스도 영”의 지배를 받아야 첫 열매 된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주권 아래 열매 된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