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 2

부모와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 합당하지 않다.

제라늄A 2022. 5. 31. 21:12

마 10:37-38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상기의 말씀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에 기독교 목사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는 목사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상용어로 기록된 말씀이나 신구약 성경 모두 “안팎”(계5:1)으로 “비유 비사”로 깊이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을 인지하시고 거짓된 기독교에서 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자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 그리고 자기 자식들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에게 합당하지 않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상기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식들”은 육신의 부모와 자식들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소경 된 기독교 목사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비유”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라 말씀하신 것이며 “아들이나 딸” 역시 그들의 속한 교인들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지금 자신이 속해있는 거짓된 기독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을 미워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철옹성 같이 굳어진 멸망의 길에서 “출애굽” 탈출할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나처럼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본보기로 십자가를 지고 죽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반드시 지고 따라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처럼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어야 산다고 했던 것입니다.  마 16:24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희를 부인하고 너희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이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죽어주신 십자가만 믿고 자기 십자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예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피”가 무엇인지 “십자가”는 영적으로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간단히 믿어버렸으므로 가장 현명한 척했으나, 자기 십자가에는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기독교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이런 사달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구원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되고 나면 그 때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땅끝”까지라는 말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크게 오해를 해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명령하셨다고 각 교회마다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끝”이라는 뜻은 어둠의 존재인 “땅의 존재”를 “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둠의 존재인 “땅의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을 때를 “땅 끝”이라 “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고 크게 오해를 하고 각 교회마다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는 교회들은 볼 수 있습니다. 지구는 둥근데 “땅 끝”은 어디인가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엄청난 오해로 “비 진리”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예수께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하셨는지를 아는 자들이 기독교에서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 예언이고 “비유 비사”인데 십자가 죽음도 모두 예언이고 “비유 비사”인데 그 예언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도 전혀 모르니 자기 십자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생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십자가로 잘 믿는답시고 지난 이천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 받았다고 열심히 십자가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렇게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형이하학의 기록된 말씀이므로 성경을 “비유 비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도 나의 십자가로 전환해서 보아야만 하는 시각이 필요한데  기독교인들은 전혀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육적 죽음”으로 기록을 했으나 그 본질은 “영적 죽음”과 “영적 부활”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어린아이 젖먹이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영적으로 죽어야 하는 “영적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영적 십자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육체가 살아 있는 자에게서 거짓된 기독교에서 거짓된 “비 진리”로 잘못 지은 자신의 “육체의 성전”을 헐어버리라는 죽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알려주셨듯이 어제의 거짓된 “양식”을 버리고 오늘의 “새 양식”인 “영의 양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이란 과거의 거짓된 “비 진리”의 “양식”에서 죽으란 뜻입니다.“비 진리”의 “양식”으로 잘못 지어진 자신의 “육체의 성전”을 헐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요 2:19-20 예수께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비유”로 너희들의 잘못된 “비 진리”의 말씀으로 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고 예수님께서 전하는 “새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경에 기록된 2000년 전 유대인의 예수를 믿어 자신 안에 잘못 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고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의 “새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과거의 “양식”이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 신구약의 모든 말씀을 “문자 성경” 그대로 믿고 신앙생활을 한 것에서 죽으라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죽기는커녕 이 같은 “육신의 안목”으로 과거의 문자 성경 그대로 믿음에서 줄기차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양식”을 버리고 과거의 믿음에서 죽고 오늘의 새 “양식”을 먹고 오늘의 “새 믿음”에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거짓된 기독교 목사에게 받은 거짓된 복음을 받은 내 것에서 죽지 않으면 새로운 내가 다시 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목사에게 받은 거짓된 복음이 진리인양 과거의 믿음에서 시퍼렇게 살아 큰소리치고 있는데, 즉 자기 십자가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요1:14)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님”으로 오셨지만 그들에게 오늘의 “실존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이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진리의 새 말씀을 가지고 오셨지만 유대인들이 당시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한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 “실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또 배척하는 것입니다. 오죽 답답하셨으면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마 8:20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유대인의 예수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님”도 한탄하십니다. 도저히 2000년 전 유대교 때나 오늘날이나 기독교인들이 “실존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하기 때문에 인자이신 예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하셨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죽어야 하는 “영적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도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도대체 거짓 목사 밑에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영적 십자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육체는 살아 있는 나의 옛 신앙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받은 거짓된 “비 진리”의 복음 “거짓 예수”를 잘못 믿고 지어진 “거짓 성전”을 헐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나라,  오늘날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은 상기의 기록된 말씀들은 모두 비켜가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지고 갈 고난의 십자가는 2000년 전의 예수님이 모두 대신지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의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기독교 신학 교리대로 믿는 것은 자유이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은 좁고 협잡하여 그 길로 가는 자가 적다고 하시며 많은 사람들이 넓고 평탄한 길로 가는데 그 길은 “죽음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의 길을 반드시 점검하시고 새롭게 변화를 받으셔야 “구원과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