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와 같이 “부모와 처자와 형제자매”를 미워하지 않는 자들은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와 처자와 형제자매”를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모두 “비유”로 기록된 말씀이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깊이 묵상을 하며 생각을 잘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미워하라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자매”는 유대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 “비 진리”의 “신학”교리로 젖을 먹이는 “부모” 기독교 목사(아비)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어미)을 미워하라는 뜻이며 사랑해야 하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는 영적인 부모인 오늘날 “실존 예수”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어미)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해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은 영적인 “아비와 어미”는 곧 하나님을 말씀을 “비유”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라 “천국”으로 가는 자들은 오늘날 기독교 목사와 그의 따르는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며 “생명의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기독교인들이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상기의 말씀에 예수님께서 미워하라는 “부모와 형제”는 육신의 부모와 형제가 아니라, 영적인 형제와 부모 즉 오늘날 기독교 “신학” 교리인 “비 진리”의 말씀을 먹는 기독교의 목사(부모)와 형제(교인)를 미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기독교인들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신학”교리인 “비 진리”의 말씀을 먹는 오늘날 기독교 목사(부모)와 형제(교인)를 떠나지 않으면 즉 “애급”이라는 세상 교회에서 “출 애급”(탈출) 하지 못하면 “참 목자인 가나안교회”의 부모와 형제를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의 길”이 좁고 협잡하다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까지 미워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날도 생명의 좁은 길을 따라가는 자들은 모두 기독교 세상교회에서 목사와 교인들을 버리고 “출 애급”(탈출)해서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가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 좁고 협잡한 길을 가는 기독교를 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입니다. 영적인 부모와 형제들은 이들이 하루속히 기독교 “신학”교리 신앙에서 벗어나기를 학수고대 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버리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생명의 길”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예수는 믿지도 않고 이단으로 배척하며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성경적인 예수는 배척하고 목사들의 말은 철석같이 믿으며 예수를 믿기만 하면 자신이 지고 갈 “십자가”도 예수님이 대신 져주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만 잘 믿으면 된다고 기독교는 “우상 예수”를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 전하는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학”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드립니다. 도마복음 105절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그 아비와 그 어미를 아는 자는 창녀의 자식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 “아비와 어미”를 아는 자는 창녀의 자식이라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보면 기독교인들은 물론 불신자도 펄쩍 뛰며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비와 어미”를 아는 자는 모두 “창녀”로 부른다고 예수께서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창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성경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마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같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왜 “비유”로 말씀하시느냐 하면 “사단”에게 속한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막 4:11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의 말씀을 모르면 “죄 사함”을 얻지 못하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 말씀의 “아비와 어미”는 “비유”의 말씀으로 육신의 부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목사(아비)들의 말씀(어미)을 미워하라고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의 말씀”을 아는 자들은 누구이며 “창녀”라고 부르게 될 자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아는 자들은 곧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오늘날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을 말하며 “창녀”라고 부르는 자들은 바로 유대교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이며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이 예수를 “창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 당시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예수”를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나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이 “창녀”나 “이단자”로 매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예수를 “창녀”나 “이단자”로 매도를 할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들으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나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책망의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 “사마리아인 또는 귀신 들린 자”라고 “예수님”을 미친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 8:38-40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 하느니라,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8:47-49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 도다. 이같이 “실존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자유자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은 받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낳으며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시며 “독사의 자식들”이라 욕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욕을 하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 “귀신 들린 자요 이단자요 창녀”라 말하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오늘날 “예수”를 “귀신 들린 자요 이단자요 창녀”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에게도 변함없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오늘날의 “예수님”을 “귀신 들린 자요 이단자요 창녀”와 같이 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소중히 간직하면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요8:51)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고 사는 것은 오늘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잘 지키면 살고 배척하면 죽는다는 뜻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