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종교 지도자들의 미혹을 주의하라,

제라늄A 2022. 6. 17. 19:58

마 24:15-21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 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 들은 산으로 도망할 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 찌어다.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40~절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은 “종말론”적인 말씀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데  사실 이 말씀은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끝나는 “종말”이 아니고 유대교 때 종교지도자들이나 또는 오늘날의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고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비 진리”로 타락한 상태에서 그것이 참인 줄 알고 신앙생활을 하던 기독교인이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참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그동안 거짓된 “비 진리”를 청산하고 “진리의 길”로 돌아서는 “비 진리”와 결별하는 신앙의 “종말”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이 해석하기 힘든 “비유”와 상징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풀어서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문자적으로 풀어서 해석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있는데 바로 그들을 “비 진리”를 가지고 있는 거짓목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본문 문장에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을 보거든 이 말씀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성전 안에(고전3:16) 가증한 것 을 보거든 즉 “비 진리”의 말씀으로 내 몸 안에 이루어진 것 가증한 것이 보이거든 이란 말씀이고 유대에 있는 자들”이란?  하나님의 백성인 오늘날 기독교인을 말하며, 산으로 도망하라” 는 뜻은  진리를 찾아서 탈출하라는 말이며 즉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으로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즉 비 진리에서 잘못된 것을 깨닫고 진리의 길로 나온 자는 진리의 말씀 안에서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이고, 그리고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으로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이 뜻은 비 진리에서 말씀을 먹던 자가 잘못된 말씀을 깨닫고 회개 한자는 다시 비 진리에 말씀으로 들어가지 말며 란 뜻이며 또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도리 키지 말며” 이 뜻은 “참 진리”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마음의 밭을 다듬는데 다시 “비 진리”에 말씀으로 되돌아가지 말며 란 뜻입니다.

아이 밴 자 와 젖먹이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는 말씀은 “아이 밴 자” 란 뜻은 비 진리에 말씀으로 내 몸 안에 이루어진 상태 즉 비 진리로 내 안에 잉태된 것을 말하고 , 또 “젖을 먹이는 자”란 뜻은  종교지도자가 비 진리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양육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망하는 날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게 기도하라”는 것은  겨울이란 추운날씨이다. 성경은 인간 심령과 관계된 기록이기 때문에 춥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심령의 믿음이 냉담해진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심령이 얼어붙은 냉담한 상태라면 즉 믿음이 식어진 자라면 오늘의 구원 주이신 예수님께 도망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황급히 도망가서 살아야 할 때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 하라”고 하신 뜻은 안식일은 편안이 쉬는 때입니다. 그런데 하루속히 예수께로 도망가야 할 때에 그 대로 주저 앉아 있으면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안주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로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오늘날 예수가 말씀을 풀어주시게 되는 마지막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열정이 뜨겁게 열심을 내야 하고 쉬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찾아 문을 두드리고 찾고 찾아서 주의 음성을 듣고 구원받도록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데” 이 말씀의 뜻은  똑같은 조건에서 말씀을 받고 있는데 말씀을 깨닳고 내 몸 안에 이룬 즉 말씀으로 거듭난 자는 데려 감을 당하고 말씀을 깨 닳지 못하고 내 안에 이루지 못한 자는 버림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또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는데 한 여자는 데려감 을 당하고 한 여자는 버려둠을 당 한다”는 뜻도  이 맷돌을 간다는 것은 그 안에 곡식과 물을 넣고 맷돌을 돌리는데 즉 하나님의 말씀(양식)으로 나의 존재를 작은 자(가루)로 만들어 하늘에 존재를 만드는 것인데, 여기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은 잘 갈려서 가루가 된 자 즉 교만한 큰 자가 갈려서 겸손한 작은 자가 된 자가 데려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처음에는 큰 자로 시작해서 점점 작아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이다. 그래서 사울의 이름은 큰 자요, 바울의 이름은 작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정리를 해본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똑같은 조건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진리의 말씀”을 내 몸 안에 이루어진 자 즉 말씀을 깨닫고 거룩히 구별된 자 즉 행함이 있는 자는 데려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깨달은 것과 말씀을 그냥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엄청 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있는 것은 백번을 알아도 언젠가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것은 행함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내 안에서 하늘에 존재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데려감을 당하고 누군가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몸은 둘이서 똑같이 그대로 있는데 말씀을 깨달은 자는 데려감을 당하는 자요, 깨닫지 못한 자는 버림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앉아 있어도 서로가 모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두가 해당되는 말씀이며 심각하게 받아 드려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서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에베소서(2:8-9)가 말씀 가지고 자칫 안일한 신앙생활을 할지는 몰라도 “성경 전체”의 흐름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가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잘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던 자들이 마지막 심판대에서 주님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 다 할 때에 주님 앞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는 모습”들을 성경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 대로 행한 자들이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마7:21~) 이 말씀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깊은 묵상으로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