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지옥문”앞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

제라늄A 2022. 6. 14. 20:23

마 22:11-13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 이어 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상기의 말씀은 어떤 임금이 큰 잔치를 배설하는데 수많은 하객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발견하고, 마치 알곡 중에서 뉘를 골라내듯이 그 한 사람을 골라내어 밖에 내쳐서 불타는 지옥 불에 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상기의 본문의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상기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하셔야 사후(死後)에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지 않게 됩니다. “예복”이 무엇을 “비유”하는지 이 말씀을 이해를 못 하면 사후에 본인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임금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아니하였는가?라고 임금이 질문을 했음에도 할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임금의 질문에 어찌해서 대답을 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곳이던 사후(死後)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전파되지 아니한 곳이 없을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또는 방송이나 문서를 통해서, 천국이 전파되지 아니한 곳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한 사람이 임금의 질문 앞에 입을 열지 못했던 것은, 그 역시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교회는 열심히 다녔지만, 바로 “예복”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   스가랴 3: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지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예복”을 입었느냐 안 입었느냐라고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성경을 많이 읽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목회자들을 통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예복”을 입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계 19:13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피 뿌린 옷”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사후에 천국에 초대를 받기를 원하시면 “피”를 “비유”한 말씀의 “예복”을 입어야 천국에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하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의 “예복”을 입는 길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러운 누더기 옷을 벗기시고 깨끗한 옷을 입혀주셨던 것입니다. 그 “옷”이 “겉옷”도 있고 “속옷”도 있으므로 말씀도 표면적 “겉의 말씀”이 있는가 하면 “속의 말씀”도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 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 하였더라,   일곱 인으로 봉했다는 것은 성경은 안팎으로 “비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은 영안이 열린 사람만 읽을 수 있지 아무나 읽을 수 없도록 봉해놓은 책이라는 것입니다. 상기의 본문에 하나님께서 천국잔치를 배설하고 사후(死後)에 말씀의 “예복”을 반드시 입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내용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주시해서 보아야 할 문장은 바로 말씀의 “예복”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의 “예복”을 입지 않으면 천국에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임금님은 상기의 본문장의 말씀같이 “예복”을 대단히 중요시하며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복”이라는 이 “옷”의 진정한 의미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예복”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목사의 일방적인 설교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이 진리인지 거짓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믿기 때문입니다.  행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기독교인들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목사의 말씀을 듣고 성경에서 나타난 베뢰아 사람처럼 “성경”을 찾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목사들의 일방적인 설교를 그대로 믿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보혈의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고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고 믿었기 때문에 “피”의 진정한 뜻을 몰랐기 때문에 사후에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얻으려면 “피”의 실체를 반드시 알아야 사후에 후회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육체를 입고(요1:14)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곧 “피”라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말씀도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말씀이 생명이며, 말씀이 “피”의 본질입니다.

눅 10:30~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옷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서 죽어가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강도를 만나서 죽어가는 그 사람 앞에 제사장인 목사가 이 “옷”을 뺏고 그를 보고 피하여 그냥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지금 강도 만난 자가 필요한 것은 죽어가는 상처를 치료받고 그 벌거벗은 몸에 “옷”을 입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목사가 빼앗는 “옷”은 하나님의 말씀의 “옷”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들을 기독교 목사의 신학 교리와 다르다 하여 이단자라고 공격하여 말씀의 “옷”을 빼앗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의 모습은 온몸이 멍든 상처뿐인 강도 만난 사람들 같은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목사가 지금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한 영혼을 돌아보지 않고 피하여 지나간다면 과연 그 목사가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당시 종교지도자의 타락한 모습이며,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을 “비유”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의 실상을 계시록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17:4 그 여자(목사)는 자주 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상기의 “여자”가 자주 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입고 있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과는 전혀 다른 “옷”이라는 것을 말합니다(계19:8)  그러므로 상기의 문장의 “여자”가 입고 있는 자주 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있으며 가장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여자”가 입은 “옷”은 각종 보석으로 치장하였다는 말은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 각종 신학 주석으로 치장하고 손에는 금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인들에게 전하는데 그 말씀 안에는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이 “여자”가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사단”에게 이미 인침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계 13:16~17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의 “여자”의 실체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비유”하는 것이며 오늘날 기독교 목사를 “비유”하는데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팔고 사는 매매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계 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 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생각을 혼합한 각종 인간들이 만든 신학 주석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국은  여러 교단을 만국이라고 말하고  무너졌다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계가 “사단의 소속”이 돼 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상기의 짐승을 추종하는 자들의 이마에 짐승의 표가 기록되었던 것과 같이 “여자”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기독교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설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안 된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전 14:34-35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의 “여자”의 실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비유”하는 것이며 오늘날 기독교 목사를 “비유”하는 것입니다.“여자”는 오늘날까지 사탄의 미혹을 받아 사탄 마귀를 섬기며 지내 왔습니다. 이제 그 진노의 마지막 심판으로 포도주 틀에 던져질 일만 남아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 (마13:41~43, 마13:49~50, 마22:13) 마태복음서에 3 곳에 똑같은 말씀이 기록된 “사후에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될 것입니다 ※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