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 기독교인의“구원과 영생”으로 가는 길 ※

제라늄A 2022. 8. 7. 18:37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과 영생”이라는 말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 없이 많이 들어온 말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 밖에 없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구원과 영생”의 길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단 시일 내에 받을 수도 있지만 평생을 다해도 못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 됐다고 성경 몇 구절의 말씀을 가지고 말하는데 기독교인들은 구원이 무엇인지 그 자체를 모르고 구원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원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필자가 말씀드리는 것도 믿음의 결국은 구원이라고 말하고 이 구원은 마지막에 그 신앙의 결국이 구원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벧전1:9)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구원에 이르려면 구원의 길을 날마다 가야하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오직 구원의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과정을 창세기에서는 창조라고 말합니다. 그럼 구원의 길이 무엇이냐 하면  땅에 속한 “어둠의 존재”들이 하늘의 “빛의 존재”로 창조가 되는 과정을 “구원의 길”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무엇으로 되느냐 하면 오직 하나님말씀으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는데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창조하는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길을 여러 “비유 비사”로 말씀을 하는데 그 목적과 길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현제 신앙생활하는 곳이 이 세상인데 성경에서는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을 “애급”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이스라엘 민족을 “비유”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이라는 “애급”이라는 세상에서 “출애굽”(탈출)을 해야 하며 “광야”라는 불모지 사막을 통과를 해서 “가나안”을 들어가야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애급, 광야, 가나안”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말씀을 “비유”와 상징으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그림자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여주신 이 길은 외적인 면으로 기독교인들이 가는 길이고 내적으로는 개개인 자신이 자기 내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내적으로 보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애급”의 존재인 내 존재를 “자아”(自我)라고 한다면 “광야”의 존재는 “무아”(無我)라고 하고 “가나안”의 존재는 “진아”(眞我)라고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이 세상이 성경에서는 “애급”세상이라고 합니다. 이 “애급의 존재”는 자기가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자아”라고 합니다. 이 “자아”는 이 세상 교회에서 “비 진리”로 잘못 형성된 나의 존재입니다. 이 “자아”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진아”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광야”를 통과해야 하는데 “애급”의 존재가 “광야”에서 죽지 않으면 “가나안 진아”로 거듭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세상이라는 “애급”에서 형성된 거짓된 내존재가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징계와 연단을 받고 완전히 거듭나지 않으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살면서 잘못 형성된 내 “자아”가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징계와 연단으로 부서 버리지 않으면 “무아”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내 “자아”가 “광야”에서 죽어야 부활이 되어 “진아”가 되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급”의 존재들이 “출애굽”(탈출)을 하여 “광야”로 나가는데 수십 년 또는 평생이 걸려도 못 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탈출)하는 것도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출애굽”(탈출)한 번을 못하고 평생을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이 세상을 마감하는 기독교인들이 거의 다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비유”로 말씀을 드리면 요한복음 2장의 “가나안 혼인잔치”에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고 항아리는 우리의 “육체”를 비유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세상이라는 기독교 “애급”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 항아리에 물을 꽉 채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급”의 물은 무슨 물입니까? 이것을 가감된 “유교 병” 말씀이라고 하는 누룩 섞인 말씀을 말합니다.“애급”에서 먹는 물은 즉 양식은 가감된 “유교 병”이라고 하는데 “유교 병”은 기독교 “신학”주석이나 교리 예화 등등 이러한 것은 성경에서 썩은 양식이라고 합니다. 세상 말을 섞어서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모든 말씀을 “유교 병”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유교 병”을 먹는 자는 끊어진다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출 12:15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유교 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출 12:19-20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 병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자 들이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라  그래서 “애급”신앙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을 받는 “기복신앙”을 채워주는 곳이 기독교의 “애급”신앙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먹는 양식을 기독교가 만들어낸 기독교 “신학” 교리라는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급”에 있는 교인들이 이 항아리에 “유교 병”을 잔뜩 채운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나와서는 “물”(말씀)을 또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때는 “애급”에서 채웠던 물을 다 쏟아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썩은 양식이기 때문에 이 물을 다 쏟아버리는 것을 “광야”생활이라고 하며 내 “자아”의 죽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내 “자아”가 죽으면 “무아”가 되는 것입니다. 내 “자아”가 죽지 않으면 “부활”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다 죽은 것은 “광야”에서 그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결국은 모두 죽고 소수의 무리만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라는 곳은 “애급”의 거짓된 신앙이 완전히 죽었을 때 “가나안”으로 들어가 깨끗이 씻은 항아리(육체) 다시 물을 채워 즉 “생명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 포도주로 만드는 것이 내 “자아”가 죽고 “무아”가 돼서 “진아”로 거듭나게 되어 천국 존재인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과정인 것입니다.

천국존재가 된다는 것은 나,라고 하는 존재가 “애급”이라는 세상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을 때 “구원과 영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애급”이라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믿음 하나 붙잡고 “광야”를 거치지 않고 쉽게 “가나안”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기독교인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왜 “출애굽기” 말씀이 성경 구약에 기록이 되어있겠습니까? 구약의 “출애굽기”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장래의 그림자로서 하나님께서 “비유 비사”로 보여 주시고 예수님께서도 “네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말씀을 문자로 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로만 이해할 뿐 그 속에 감추어있는 “영적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급 광야 가나안”의 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가야 하는 천국의 길을 “비유 비사”로 거울과 같이 보여주시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요한복음 5:39~41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예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