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2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와 같이 한 알의 밀알에서 똑같은 많은 밀알(아들)들을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씨앗과 열매는 성분이 똑같은 것입니다.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예수가 죽으심으로 예수님과 똑 같은 제자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롬 8:29 하나님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맏아들(장남)이 되시고 그 많은 아들(열매)들은 예수님과 동등한 자격으로 차남의 자격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의 실체가 되고 그 무덤에서 부활된 제자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진리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씨”로 낳음을 받아야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예수님과 사도들과 같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신(神)이신 것처럼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하늘에 살고 있는 하나님들이라는 것이며 유일한 존재들이니 예수님과 사도들은 각자가 하나님이요 신(神)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다 통달하고 하나님들이 되어 하나님으로 사는 사람들이라 하셨습니다. 요 10:35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신(神)이라 하셨고, 그들은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통달하고 예수와 같은 사람들을 신(神)들이라 하셨습니다. 신(神)이 된 사람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애급”이라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와 같은 영적 상태의 존재들이 거듭나 “광야”의 육지에서 사는 짐승과 같은 존재들을 이런 영적존재들을 성경은 죄인이라고 하여 살았는데 “가나안”의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진 아들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거듭나니 이제는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의인(義人)이요 신(神)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땅의 것을 찾고 땅의 말을 가지고 살면 물고기나 짐승들이 되고 하나님의 법(진리)을 가지고 살면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르는 것이며 하나님의 참 진리를 가지고 살면 그들을 신(神)들이라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나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본성은 선(善)한 것도 아니며 악(惡) 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악행을 하면 악인(惡人)이 되고 선행을 하면 선인(善人)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믿느냐에 따라 그대로 그 사람이 되는 것이며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짐승도 되고 하나님의 아들도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이렇게 빈 그릇과 같습니다.
채워지는 대로 “성배”가 될 수도 있으며 “보배”함이 될 수도 있고 쓰레기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 육체에 보배로 채울 것인지 아니면 쓰레기로 채울 것인가? 사람은 매일 선택하는 기로에 서있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 자기 인생이 되는 것이며 그 결과는 모두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근심 걱정을 담으면 불행한 사람들이 되고 웃음과 감사를 담으면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멋지게 살다 가는 사람도 있고 불평과 짜증으로 살다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 작품이기에 자기가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 거짓목회자를 따라다닌 사람들은 항상 시한폭탄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을 따라다니면 하나님처럼 행동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머뭇거리기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옛말에 "비전 상실 증후군"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서서히 익숙해지게 되면 그곳에서 절대로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로 "비전 상실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 모양 여기가 좋사오니 평생을 기독교에서 젖먹이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에는 유명한 개구리 요리가 있습니다. 이 요리는 손님이 앉아 있는 식탁 위에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직접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 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 요리입니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오기 때문에 냄비 속에는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의 물을 부어 듭니다. 그러면 개구리는 미지근한 물이 너무 좋아 행복해하며 만족하다는 듯이 가만히 엎드려 있습니다. 그때부터 매우 약한 불로 물을 데우기 시작합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서서히 가열하기 때문에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기분 좋게 잠을 자면서 죽어 가게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은 마치 자기를 요리하는 현실이 따뜻한 목욕물이라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전상실 증후군"은 사람들을 개구리처럼 삶아지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야 한다는 비전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상실해버린 사람들은 날마다 앉아 누워 땅으로 기어들어가면서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며 그러한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현실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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